찰스 에드워드 러셀(Charles Edward Russell, 1860–1941)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활동한 저명한 언론인이자 작가, 정치 활동가이다. 그는 사회의 부조리와 부패를 고발하는 탐사 보도 기자인 머크레이커(Muckraker)의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아이오와주 대븐포트에서 신문 편집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일찍이 언론계에 투신하여 《뉴욕 월드》, 《뉴욕 아메리칸》, 《시카고 이그재미너》 등 주요 신문사에서 기자 및 편집자로 경력을 쌓았다.
러셀은 언론 활동을 통해 산업 자본주의의 폐해와 기업의 독점 문제를 예리하게 파헤쳤다. 특히 1905년에 발표한 《세계 최대의 트러스트(The Greatest Trust in the World)》는 육류 포장 산업(Beef Trust)의 부패와 독점적 횡포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외에도 그는 조지아주 교도소 시스템의 문제점, 철도 기업의 비리 등을 고발하며 아이다 타벨, 링컨 스테펜스, 업튼 싱클레어 등과 함께 진보주의 시대(Progressive Era)의 개혁 여론을 주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탐사 보도를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모순을 목격한 러셀은 1908년 미국 사회당(Socialist Party of America)에 입당하여 급진적인 정치 활동가로 변모했다. 그는 사회당 소속으로 뉴욕 주지사, 뉴욕 시장, 미국 상원의원 선거 등에 수차례 출마하여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공공 소유권 확대를 주장했다. 비록 공직 선거에서 당선되지는 못했으나, 그의 활발한 캠페인은 사회주의 의제를 미국 주류 정치 담론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참전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면서 반전 평화주의를 고수하던 당 지도부와 갈등을 빚었고, 결국 당에서 제명되었다.
러셀의 업적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인종 차별 철폐를 위한 노력이다. 그는 흑인의 인권 신장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1909년 윌리엄 잉글리시 월링, W. E. B. 듀보이스 등과 함께 전미 흑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를 공동 창설했다. 그는 협회의 초기 이사로서 흑인에 대한 린치 반대 운동과 법적 평등권 보장을 위해 헌신했으며, 백인 진보 지식인으로서 흑인 민권 운동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는 데 앞장섰다.
말년에 러셀은 정치적 활동보다는 저술 활동에 집중하며 작가로서의 역량을 발휘했다. 그는 시, 소설, 평론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남겼으며, 특히 음악과 예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1927년에 출간한 지휘자 시어도어 토마스의 전기 《미국 오케스트라와 시어도어 토마스(The American Orchestra and Theodore Thomas)》는 그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1928년 퓰리처상 전기 부문을 수상했다. 평생을 사회 정의 실현과 진실 탐구에 바친 찰스 에드워드 러셀은 1941년 워싱턴 D.C.에서 81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