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은 일제 강점기 한국 독립운동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해였다.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결합한 최대 규모의 항일 사회단체인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되었다. 신간회는 '민족 단결'과 '기회주의 부인'을 강령으로 내걸고 전국적인 지부망을 구축하며 독립운동의 역량을 결집했다. 같은 해 여성 운동 단체인 근우회(槿友會)도 조직되어 여성의 권익 신장과 항일 투쟁을 병행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정치적 격변이 일어났다.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이 상하이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 세력을 축출하면서 제1차 국공합작이 결렬되었다. 이 사건은 중국 내전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동아시아 전체의 이념적 지형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소련에서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권력 장악을 확고히 하는 과정에서 경쟁자였던 레프 트로츠키가 공산당에서 제명되는 등 사회주의권 내부의 권력 재편이 가시화되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인류의 활동 영역을 넓히는 역사적인 성취가 잇따랐다. 미국의 비행사 찰스 린드버그가 '세인트루이스의 정신'호를 타고 뉴욕에서 파리까지 사상 최초의 대서양 무착륙 단독 횡단 비행에 성공했다. 또한 벨기에에서 열린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 양자역학의 해석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으며, 이는 현대 물리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중문화와 미디어 영역에서도 혁명적인 변화가 나타났다. 미국에서 세계 최초의 유성 영화인 '재즈 싱어(The Jazz Singer)'가 개봉하면서 무성 영화 시대가 저물고 소리가 있는 영화의 시대가 열렸다. 영국에서는 영국방송공사(BBC)가 국왕의 칙령에 의해 공영 방송으로 재출범하며 현대적 방송 체제의 모델을 제시했다. 미국에서는 러시모어산에 거대한 대통령 조각상을 새기는 공사가 시작되어 예술과 토목 기술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경제적으로는 이른바 '광란의 20년대(Roaring Twenties)'가 절정에 달하며 대중 소비 사회가 확산되던 시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번영의 이면에는 과도한 투기와 자산 거품이 존재했으며, 이는 훗날 발생할 세계 대공황의 전조를 품고 있었다. 1927년은 이처럼 정치적 갈등과 과학적 진보, 그리고 문화적 혁신이 교차하며 현대 사회의 기틀을 형성한 해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