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8년은 9세기의 68번째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다. 동아시아, 유럽, 중동 등 세계 각지에서 문화적,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사건들이 발생했던 시기이며, 특히 인쇄술의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로 기록되어 있다. 당시 세계는 당나라의 쇠퇴, 아바스 왕조의 분열, 그리고 유럽의 바이킹 침략 및 레콩키스타와 같은 격동의 흐름 속에 있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은 중국 당나라에서 발생했다. 868년 5월 11일(음력 4월 15일), 왕개(王玠)라는 인물이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금강반야바라밀경》(금강경)을 목판으로 인쇄했다. 1907년 오렐 스타인이 둔황 막고굴에서 발견한 이 두루마리에는 "함통(咸通) 9년 4월 15일에 왕개가 부모를 위하여 공경히 만든다"라는 간기가 명확히 적혀 있다. 이는 현존하는 인쇄물 중 제작 연대가 확실하게 기록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으로, 인류의 인쇄 문화사와 불교 전파 연구에 있어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현재 이 유물은 대영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훗날 포르투갈이라는 국가가 탄생하는 기원이 마련되었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의 알폰소 3세 휘하의 장군 비마라 페레스(Vímara Peres)는 무어인들과의 전투를 통해 두로강 하구의 항구 도시인 포르투칼레(Portucale, 현재의 포르투)를 탈환했다. 868년 페레스는 이 지역의 첫 번째 백작으로 임명되었으며, 그가 세운 포르투갈 백작령(Condado de Portucale)은 훗날 포르투갈 왕국의 모태가 되었다. 포르투갈이라는 국명 또한 이 도시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중동 지역에서는 이집트의 독자적인 왕조 성립을 위한 서막이 열렸다.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무타즈는 튀르크계 군인 아흐마드 이븐 툴룬을 이집트 총독의 대리로 임명했다. 868년 이집트에 입성한 이븐 툴룬은 재정적, 군사적 기반을 다지며 바그다드의 중앙 정부로부터 사실상 독립적인 통치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이는 이집트 지역에서 최초의 독립적인 이슬람 왕조인 툴룬 왕조가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바스 칼리프조의 지방 통제력이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영국과 한반도에서도 역사적인 흐름이 이어졌다. 잉글랜드에서는 웨섹스의 앨프레드(훗날 앨프레드 대왕)가 머시아의 귀족 앨스위드와 결혼하며 데인족(바이킹)의 침략에 맞서기 위한 앵글로색슨 왕국 간의 동맹을 강화했다. 당시 잉글랜드 중부는 이교도 대군세(Great Heathen Army)의 점령하에 놓여 있었고, 868년에는 머시아의 노팅엄에서 바이킹과 웨섹스-머시아 연합군 간의 대치가 이루어졌다. 한편, 한반도의 신라는 제48대 경문왕 8년으로, 중앙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지방의 불안정 요소가 내재되어 있었으나 당나라와의 사신 교류 등 외교 활동은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