툴룬 왕조

툴룬 왕조는 9세기 후반 이집트와 시리아 지역을 통치했던 이슬람 왕조로, 아바스 왕조의 권위가 약해진 틈을 타 이집트에서 사실상의 독립을 쟁취한 최초의 가문이다. 창시자인 아흐마드 이븐 툴룬은 아바스 왕조의 중앙아시아 출신 튀르크계 군인으로, 868년 이집트 총독의 대리로 파견된 후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바그다드 중앙 정부에 보내는 조세를 차단하여 내정에 투자했으며, 이를 통해 이집트는 로마 제국 시기 이후 처음으로 독자적인 정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아흐마드 이븐 툴룬의 통치기 동안 이집트는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그는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나일강의 수로 체계를 정비하고 수량을 측정하는 닐로미터를 수리하는 등 치수 사업에 주력했다. 또한, 튀르크인, 그리스인, 흑인 노예들로 구성된 강력한 상비군을 조직하여 군사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국력을 바탕으로 878년에는 시리아와 팔레스타인 지역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지중해 동부의 패권을 장악했으며, 아바스 왕조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났다.

문화와 건축 면에서도 툴룬 왕조는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아흐마드 이븐 툴룬은 기존의 수도인 후스타트 북쪽에 '알카타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고 대규모 궁전과 병원(비마리스탄)을 세웠다. 특히 879년에 완공된 아흐마드 이븐 툴룬 모스크는 이라크 사마라 양식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나선형 미나레트와 정교한 장식으로 유명하며, 오늘날까지 카이로에 보존되어 당시의 뛰어난 건축 기술을 증명하고 있다. 이 시기 이집트는 바그다드에 비견되는 문화적 중심지로 부상했다.

그러나 왕조의 번영은 창시자 사후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884년 아흐마드 이븐 툴룬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 쿠마라와이가 즉위했으나, 그는 지나친 사치와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국가 재정을 탕진했다. 쿠마라와이 사후 후계자들 사이의 권력 다툼과 군부 내 튀르크계 장교들의 반란이 이어지면서 중앙 집권 체제는 무너졌다. 이 틈을 타 아바스 왕조는 이집트 탈환을 시도했고, 결국 905년 아바스 군대가 이집트를 침공하여 수도 알카타이를 파괴함으로써 툴룬 왕조는 37년 만에 멸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