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Vyacheslav Mikhailovich Molotov)는 소련의 정치가이자 외교관으로,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기 동안 소련 정부의 핵심 실권자로 활동했다. 본명은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스크랴빈이며, '몰로토프'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망치를 뜻하는 '몰로트(molot)'에서 유래한 혁명가 시절의 가명이다. 그는 소련 각료평의회 의장과 외무인민위원을 역임하며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국제 정세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1890년 뱌트카 주에서 태어난 그는 1906년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하며 혁명 운동에 투신했다. 볼셰비키 분파에서 활동하던 그는 여러 차례 체포와 유배를 겪으면서도 당 내 입지를 다졌으며, 1917년 10월 혁명 당시에는 페트로그라드 군사혁명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했다. 레닌 사후 벌어진 권력 투쟁에서 그는 스탈린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며 그의 가장 신뢰받는 조력자가 되었고, 1930년대 대숙청 기간에는 스탈린의 명령을 충실히 집행하며 당 내 2인자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외교관으로서 몰로토프의 가장 상징적인 행보는 1939년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체결한 독소 불가침 조약이다. 이 조약은 비밀 의정서를 통해 폴란드 분할과 발트 3국 점령을 합의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다. 또한 겨울 전쟁 당시 핀란드인들이 소련의 폭격에 저항하며 사용한 수제 화염병인 '몰로토프 칵테일'은 그가 "핀란드인들에게 빵을 투하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조롱의 의미로 이름 붙여진 것으로 유명하다. 전쟁 중과 전후 처리 과정에서도 그는 얄타 회담과 포츠담 회담 등에 참석하여 소련의 이익을 대변했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한 이후 몰로토프는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는 니키타 흐루쇼프가 주도한 '탈스탈린화' 정책에 정면으로 반대하며 보수적인 노선을 고수했다. 1957년에는 게오르기 말렌코프 등과 함께 흐루쇼프를 축출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른바 '반당 집단'의 일원으로 몰려 주몽골 대사로 좌천되었다. 이후 1961년에는 당에서 제명되는 수모를 겪었으며 정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몰로토프는 실각 이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신념과 스탈린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았으며, 1984년 콘스탄틴 체르넨코 정권기에 당적을 회복했다. 그는 1986년 96세를 일기로 사망할 때까지 소련 관료주의의 전형이자 스탈린 체제의 산증인으로 남았다. 그의 생애는 제정 러시아의 몰락부터 냉전의 전개에 이르기까지 소련 역사의 격동기를 관통하며, 냉혹하고 완고한 외교 스타일로 인해 서방 국가들로부터 '강철 엉덩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