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1년

961년은 서기 10세기의 중반기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앙 집권화와 영토 확장이 활발히 전개되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송나라가 건국된 직후 국가의 기틀을 잡아가고 있었으며, 고려에서는 광종이 강력한 왕권 강화 정책을 펼치며 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유럽과 비잔티움 제국 역시 대외 정벌과 후계 구도 확립을 통해 중세 국가로서의 위상을 공고히 하던 시기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건륭 2년을 맞아 '배주석병권(杯酒釋兵權)'을 단행한 해로 기록된다. 조광윤은 술자리에서 휘하 장수들에게 은퇴를 권유함으로써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할 가능성이 있는 무장 세력의 군사 지휘권을 평화적으로 회수하였다. 이 사건은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을 종식시키고 송나라가 문치주의 국가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군벌의 발흥을 억제하여 중앙 정부의 권위를 세우는 데 기여하였다.

고려에서는 광종 12년에 해당하며, 왕권 강화를 위한 불교 통합 정책이 구체화되었다. 광종은 개경에 귀법사(歸法寺)를 창건하고 고승 균여를 주지로 삼아 화엄종을 중심으로 교종의 통합을 시도하였다. 이는 앞서 시행한 노비안검법과 과거제에 이어, 사상적 통일을 통해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 국왕 중심의 질서를 확립하려는 의도였다. 또한 이 시기 고려는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하거나 대외적으로는 송나라와 외교 관계를 유지하며 국가적 자존감을 드러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군사적 승보가 전해진 해였다. 훗날 황제가 되는 니케포로스 2세 포카스가 지휘하는 비잔티움 군대는 이슬람 세력이 점령하고 있던 크레타 섬을 완전히 탈환하였다. 약 130년 동안 이어진 사라센의 크레타 통치를 종식시킨 이 승리는 지중해의 제해권을 다시 확보하는 중대한 전환점이 되었으며, 비잔티움 제국의 군사적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독일 국왕 오토 1세가 이탈리아 원정을 앞두고 자신의 아들 오토 2세를 아헨에서 공동 국왕으로 선출하고 대관식을 거행하였다. 이는 왕위 계승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이듬해인 962년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기 위한 정치적 정지 작업의 일환이었다. 같은 해 이슬람 스페인의 후우마이야 왕조에서는 압드 알 라만 3세가 사망하고 알 하캄 2세가 즉위하며 코르도바 칼리파국의 전성기를 이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