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7년은 9세기 후반에 속하는 해로, 목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이 시기는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 격변과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게 발생하던 전환기였다. 특히 동아시아 역사에서는 통일신라의 하대 혼란이 극에 달하여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상실되고, 중국 당나라 역시 멸망이 임박하여 기존의 국제 질서가 붕괴되는 양상이 뚜렷하게 나타난 해이다.
한반도 역사에서 897년은 통일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통치력을 잃고 물러난 해로 기록된다. 재위 기간 내내 각지에서 일어난 농민 반란과 호족들의 봉기로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던 진성여왕은, 최치원 등의 개혁 건의에도 불구하고 쇠락해가는 국운을 되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해 6월, 여왕은 태자 요(嶢)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는데, 그가 바로 신라 제52대 효공왕이다. 진성여왕은 양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해 12월에 승하하였다. 이 시기는 궁예와 견훤 등 강력한 호족 세력이 독자적인 정권을 구축하며 후삼국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상황이 심화되던 때였다.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 정세 또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중국 당나라에서는 소종(昭宗)이 재위 중이었으나, 환관과 절도사들의 전횡으로 인해 황권이 바닥에 떨어지고 제국이 사실상 분열되는 과정에 있었다. 일본에서는 897년 7월, 우다 천황이 양위하고 다이고 천황이 즉위하였다. 다이고 천황의 즉위는 율령 국가 체제를 재건하려는 '엔기의 치'의 서막이 되었으며, 당대 최고의 문장가이자 정치가였던 스가와라노 미치자네가 조정의 실권자로 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럽, 특히 기독교 세계에서도 897년은 극심한 혼란의 시기였다. 로마 교황청에서는 교황 로마노가 폐위되고 테오도로 2세가 그 뒤를 이었으나, 그 또한 재위 20일 만에 사망하는 등 교황권 내부의 파벌 싸움과 정치적 암투가 극에 달했다. 이는 전임 교황 스테파노 6세가 전임자 포르모소의 시신을 꺼내 재판한 엽기적인 '시체 공의회' 사건의 여파가 지속된 결과였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알프레드 대왕이 바이킹의 침략을 막아내고 앵글로색슨 왕국의 기틀을 다지던 말년에 해당하며, 서유럽의 봉건 질서가 서서히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종합적으로 897년은 구체제와 신체제가 충돌하고 권력의 중심이 이동하는 역사적 분기점이었다. 신라에서는 천년 왕조의 쇠락이 돌이킬 수 없는 흐름이 되었고, 중국과 유럽에서도 중앙 권력의 약화와 지방 세력 혹은 내부 분열이 가속화되었다. 이러한 897년의 역사적 흐름은 이후 10세기에 도래할 고려의 건국, 당나라의 멸망 및 5대 10국 시대의 개막 등 새로운 국가들의 탄생과 국제 질서 재편의 전주곡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