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로 2세 라스카리스(Theodore II Laskaris, 1221년경 ~ 1258년 8월 16일)는 니케아 제국의 제3대 황제(재위: 1254년 ~ 1258년)이다. 요안니스 3세 바타치스와 이리니 라스카리나의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부친의 서거 이후 제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비잔티움 제국의 수복을 목표로 했던 니케아 제국의 통치자들 중에서도 지적 능력이 매우 뛰어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는 즉위 직후부터 귀족 가문들의 세력을 억제하고 중앙 집권화를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테오도로 2세는 전통적인 귀족 계층을 불신하였으며, 그 대신 자신의 측근이나 신분이 낮은 유능한 인물들을 중용하여 행정 및 군사 요직에 배치하였다. 이러한 행보는 귀족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으나, 황제는 관료제를 정비하고 국가의 행정 효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였다.
군사적으로는 발칸 반도에서의 영토 수복과 방어에 힘썼다. 특히 불가리아 제국의 미하일 아센 1세가 니케아 제국의 영토를 침범하자, 테오도로 2세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두 차례의 원정을 단행하였다. 그는 뛰어난 전술을 바탕으로 로도피 산맥과 마케도니아 일대의 영토를 성공적으로 탈환하였으며, 불가리아와의 평화 조약을 통해 니케아의 우위를 확정 지었다. 또한 에페이로스 전제군주국과의 분쟁에서도 승리하여 제국의 서쪽 국경을 공고히 하였다.
테오도로 2세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여 '철학자 황제'라고도 불렸다. 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던 니키포로스 블레미디스 밑에서 수학하였으며, 철학, 신학, 수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방대한 저술 활동을 남겼다. 그의 치세 동안 니케아는 문화적, 지적 중심지로 번영하였고, 그는 이를 통해 비잔티움 문화의 정체성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그는 평생 간질로 추정되는 지병에 시달렸으며, 이는 그의 통치 말기에 건강 악화와 더불어 성격적 변화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1258년, 30대의 젊은 나이로 서거한 뒤 그의 어린 아들 요안니스 4세가 즉위하였으나, 테오도로 2세에 의해 억압받던 귀족 세력의 중심 인물인 미하일 8세 팔레올로고스가 정권을 찬탈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비록 짧은 재위 기간이었으나 테오도로 2세는 국방과 문화 양면에서 제국의 기틀을 다진 군주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