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4년은 13세기 중반의 평년으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기존의 질서가 재편되거나 대규모 군사적 충돌이 지속되던 시기였다. 유라시아 대륙 전역은 몽골 제국의 팽창에 따른 영향권 아래 놓여 있었으며, 유럽에서는 왕권과 교황권의 변화가 맞물리며 중세 사회의 격동이 이어졌다. 이 해는 정치, 군사, 문화적 측면에서 기록될 만한 여러 사건이 발생한 해였다.
고려사에서 1254년은 몽골의 제6차 침입이 시작된 해로서 매우 비극적인 시기로 기록된다. 몽골의 장수 차라대(車羅大)가 대규모 군대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여 전국 각지를 유린하였다. 강화도에 거점을 둔 고려 조정은 항전 의지를 굽히지 않았으나, 본토의 백성들은 전례 없는 고초를 겪었다. 기록에 따르면 이 해에만 20만 명이 넘는 고려인이 포로로 잡혀갔으며, 가옥과 전답이 황폐화되어 국가적 재난 상황에 직면했다. 이는 몽골의 고려 침공 기간 중 인명 피해가 가장 컸던 시기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5월 21일, 독일 국왕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콘라트 4세가 사망하였다. 그의 죽음은 호엔슈타우펜 왕조의 실질적인 몰락을 의미했으며, 독일 지역은 강력한 중앙 권력이 부재한 '대공위 시대'의 혼란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게 되었다. 또한 종교계에서는 12월 7일 교황 인노첸시오 4세가 서거하고, 뒤이어 알렉산데르 4세가 제181대 교황으로 선출되어 가톨릭 세계의 새로운 수장이 되었다.
프랑스의 루이 9세는 1254년에 제7차 십자군 원정을 마치고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그는 1248년부터 시작된 원정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포로로 잡히는 등 고난을 겪었으나, 귀환 후 프랑스 내부의 행정 개혁과 사법 체계 정비에 집중하며 성군으로서의 기틀을 다졌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카스티야의 알폰소 10세가 살라만카 대학교에 칙령을 내려 대학의 제도적 기반을 확립하는 등 교육과 학문 분야에서의 발전도 이루어졌다.
몽골 제국은 뭉케 칸의 지도 아래 정복 전쟁을 지속하며 제국의 영토를 확장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대리국을 완전히 병합한 몽골군이 남송을 포위하기 위한 전략적 기틀을 마련하였고, 서아시아 방면에서는 훌라구가 이끄는 군대가 이란 지역으로 진출하여 훗날 일 칸국 건설의 토대를 닦았다. 문화적으로는 세계적인 여행가 마르코 폴로가 이 해에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향후 동서양 교류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인물의 등장을 알린 해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