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홍콩의 행정장관 선거 방식에 대한 중화인민공화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결정에 반대하여 일어난 대규모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흔히 '우산 혁명' 또는 '우산 운동'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운동의 직접적인 발단은 2014년 8월 31일 전인대가 발표한 2017년 홍콩 행정장관 선거안이었다. 해당 안은 후보추천위원회의 과반수 찬성을 얻은 후보자 2~3명에게만 입후보 자격을 부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으며, 이는 사실상 친중파 인사들만이 선거에 나설 수 있도록 제한하는 조치로 간주되어 홍콩 시민들의 강력한 반발을 샀다.
본격적인 시위는 2014년 9월 말 학생들의 동맹휴학과 거리 행진으로 시작되었다. 9월 28일, 시위대가 정부 청사가 위치한 애드미럴티(Admiralty) 일대를 점거하자 경찰은 최루탄과 페퍼 스프레이를 동원하여 강제 해산을 시도했다. 이때 시위대가 경찰의 최루액을 막기 위해 우산을 펼쳐 들고 저항하는 모습이 전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우산 혁명'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후 우산은 홍콩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자 비폭력 저항의 아이콘이 되었다.
이 운동은 베니 타이 홍콩대 교수가 제창한 '사랑과 평화로 센트럴을 점령하라(Occupy Central with Love and Peace)' 운동과 조슈아 웡이 이끄는 학생단체 '학민사조', 그리고 홍콩전상학생연맹의 연대로 전개되었다. 시위대는 애드미럴티 외에도 몽콕, 코즈웨이베이 등 홍콩의 주요 도심과 상업 지구를 점거하고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전인대의 선거안 철회와 진정한 보통선거 실시, 그리고 당시 행정장관이었던 렁춘잉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정부와 시위대 사이의 대치는 79일간 이어졌으나, 홍콩 당국과 중국 정부는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위 장기화에 따른 시민들의 생활 불편과 경제적 타격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시위 내부에서도 투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가 발생했다. 결국 법원의 점거 해제 명령과 경찰의 대대적인 행정 집행 및 강제 철거가 진행되면서 2014년 12월 15일 모든 시위 현장이 정리되며 운동은 공식적으로 종료되었다.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은 비록 제도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으나, 홍콩의 젊은 세대에게 정치적 각성을 불러일으키고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확인시킨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이 운동을 통해 형성된 시민사회 역량과 정치적 정체성은 이후 2019년 홍콩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로 이어지는 민주화 운동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또한 국제 사회에 홍콩의 일국양제 체제와 인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