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7년

1497년은 대항해시대의 전환점을 마련한 해로 평가받는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쿠 다 가마는 7월 리스본을 출발하여 희망봉을 경유해 인도로 향하는 항로 개척에 나섰다. 이는 유럽과 아시아를 직접 잇는 해상 무역로를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한편,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존 캐벗은 영국 국왕 헨리 7세의 지원을 받아 북아메리카의 뉴펀들랜드 부근에 도달하며 북미 대륙의 존재를 유럽에 알렸다. 이러한 탐험 활동들은 유럽 국가들이 세계적인 해상 강국으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조선에서는 연산군 3년에 해당하는 해로, 성종 대의 문물 정비가 마무리되고 왕권과 신권 사이의 긴장이 점차 고조되던 시기였다. 연산군은 즉위 초기 사림 세력과 훈구 세력의 균형을 유지하며 정국을 운영했으나, 점차 간관들의 간쟁에 피로감을 느끼며 대간들과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 조선은 국가 의례의 기본이 되는 '국조오례의'를 개정 및 보완하며 유교적 국가 체제를 공고히 하려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외적인 정비 이면에는 훗날 발생할 무오사화의 불씨가 되는 정치적 대립이 잠재되어 있었다.

유럽 대륙 내부에서는 종교적, 사회적 변동이 극심하게 일어났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주도로 '허영의 소각' 사건이 발생했다. 사보나롤라는 타락한 교회와 세속적인 사치를 비판하며 수많은 예술품, 거울, 서적 등을 불태웠으며, 이는 피렌체 르네상스의 문화적 위축을 가져오기도 했다. 또한 포르투갈마누엘 1세는 자국 내 유대인들에게 개종이나 추방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정책을 시행하여 이베리아반도의 인구 구조와 경제적 지형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영국에서는 튜더 왕조의 지배 체제에 저항하는 대규모 민중 봉기가 일어났다. 헨리 7세가 스코틀랜드와의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과도한 세금을 징수하자, 이에 반발한 콘월 지역 주민들이 무장 봉기를 일으켜 런던 근교까지 진격했다. 이른바 '콘월 반란'으로 불리는 이 사건은 비록 국왕군에 의해 진압되었으나, 튜더 왕조 초기 중앙 집권화 과정에서 발생한 지방의 저항과 재정적 갈등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497년은 이처럼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해양을 통한 연결이 가속화된 해인 동시에, 각 지역 내부적으로는 정치적 권위와 사회적 질서를 둘러싼 갈등이 끊이지 않았던 시기였다. 동양과 서양 모두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노력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이 교차하며 근세로의 이행을 준비하는 역사적 흐름 속에 있었다. 이러한 사건들은 단순한 일회성 사건에 그치지 않고 이후 수세기 동안 지속될 국제 질서와 문화적 변천의 기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