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롤라모 사보나롤라(Girolamo Savonarola, 1452~1498)는 15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도미니코 수도회 소속의 수도사이자 종교 개혁가이다. 그는 페라라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의학을 공부했으나, 세상의 부패에 환멸을 느끼고 1475년 수도원에 입교했다. 사보나롤라는 성경의 가르침에 따른 엄격한 도덕적 삶과 가톨릭 교회의 내부 쇄신을 강력히 주장하며 당대 최고의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다.
1490년대 초 피렌체로 돌아온 사보나롤라는 메디치 가문의 독재와 교회의 타락을 비판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이탈리아를 침공하고 메디치 가문이 피렌체에서 축출되자,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실질적인 정치적·종교적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는 피렌체를 신권 정치 중심의 공화정으로 개편하였으며, 피렌체가 도덕적으로 정화된다면 전 유럽을 구원할 새로운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선포했다.
사보나롤라의 개혁은 극단적인 금욕주의적 성격을 띠었다. 그는 1497년 '허영의 소각(Bonfire of the Vanities)'이라 불리는 사건을 주도하여, 사치품, 화장품, 도박 기구뿐만 아니라 인문주의적 가치를 담은 예술 작품과 서적들을 광장에 모아 불태웠다. 이러한 행보는 르네상스의 화려한 문화를 향유하던 이들에게 반감을 샀으나, 당시 종말론적 불안감에 휩싸여 있던 많은 시민은 그의 예언자적 권위에 압도되어 개혁에 동참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의 영향력은 로마 교황청과의 갈등으로 인해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부패한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도덕성을 맹비난하며 교황의 파문령을 무시하고 설교를 강행했다. 이에 교황은 피렌체 시 전체에 대한 성무 금지령을 위협하며 압박을 가했고, 피렌체 내부에서도 극단적인 통제에 지친 반대파들이 세력을 키웠다. 결국 1498년 사보나롤라는 대중의 지지를 잃고 체포되었다.
1498년 5월 23일, 사보나롤라는 이단과 분열 조장 혐의로 기소되어 동료 수도사들과 함께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서 교수형에 처해진 뒤 화형당했다. 그의 사후 피렌체는 다시 세속적인 통치 체제로 돌아갔으나, 그가 남긴 교황권 비판과 종교 쇄신 의지는 훗날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에 영감을 주는 선구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현대 가톨릭 교회 일각에서는 그를 순교자적 인물로 재평가하려는 움직임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