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고타의 공녀 지빌라(1908-1972)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마지막 공작인 카를 에두아르트와 빅토리아 아델라이드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이다. 본명은 지빌라 칼마 마리아 알리체 바틸디스 페오도라(Sibylla Calma Maria Alice Bathildis Feodora)이며,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녀이기도 하다. 그녀는 독일 고타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유럽 왕실 간의 유대 속에서 전형적인 왕실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지빌라는 1932년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결혼하며 스웨덴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당시 국왕이었던 구스타프 5세의 손자이자 왕위 계승 서열 2위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은 독일 코부르크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 후 스웨덴으로 건너가 정착했다. 지빌라는 베스테르보텐 공작부인이라는 칭호를 얻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전후의 민감한 국제 정세 속에서 독일 출신이라는 배경 때문에 초기에는 스웨덴 대중으로부터 냉담한 시선을 받기도 했다.
1947년, 지빌라의 삶에는 큰 시련이 찾아왔다. 남편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가 덴마크 코펜하겐 공항에서 발생한 비행기 추락 사고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이다. 당시 지빌라는 다섯 아이의 어머니였으며, 막내아들인 칼 구스타프는 겨우 생후 9개월이었다. 남편의 사망으로 그녀는 왕비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잃었지만, 미래의 국왕이 될 아들의 어머니로서 왕실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키게 되었다.
지빌라는 슬하에 마르가레타, 비르기타, 데지레, 크리스티나 네 공주와 아들 칼 16세 구스타프를 두었다. 그녀는 남편 없이 홀로 자녀들을 양육하며 왕실 공무를 수행했다. 특히 1965년 시어머니인 루이즈 왕비가 사망한 후에는 시아버지 구스타프 6세 아돌프를 보필하며 스웨덴 왕실의 실질적인 안주인 역할을 대행했다. 그녀는 여러 자선 단체를 후원하고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왕실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지빌라는 아들 칼 16세 구스타프가 국왕으로 즉위하기 약 1년 전인 1972년 11월 28일, 스톡홀름에서 암으로 별세했다. 그녀는 평생 독일인이라는 편견과 남편의 부재라는 역경을 겪으면서도 스웨덴 왕실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빌라의 유해는 솔나의 왕실 묘지에 남편과 함께 안치되었으며, 그녀의 가문적 혈통은 오늘날까지 스웨덴 왕실의 역사 속에 깊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