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는 19세기 프랑스의 화가로, 사실주의에서 인상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단계에서 서구 근대 미술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이다. 그는 부유한 법관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잇기를 바랐던 부친의 기대를 뒤로하고 예술가의 길을 선택했다. 토마 쿠튀르의 화실에서 고전적인 회화 기법을 습득하는 한편, 루브르 박물관의 거장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독자적인 화풍을 연구했다. 그는 당대 아카데미즘의 엄격한 규범에서 벗어나 현대적인 삶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마네의 예술적 특징은 전통적인 명암법과 원근법을 거부하고 색채의 평면성과 강렬한 대비를 강조한 점에 있다. 그는 르네상스 이후 정립된 '눈속임' 기법을 지양하고 선명한 윤곽선과 넓은 색면을 사용하여 회화가 가진 평면적 본질을 드러냈다. 이러한 방식은 당시 비평가들로부터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비난을 받았으나, 대상의 실체를 빛과 색채의 관계로 파악하려 했던 젊은 화가들에게 새로운 시각적 영감을 제공했다.
그의 대표작인 <풀밭 위의 점심 식사>(1863)와 <올랭피아>(1863)는 파리 화단에 큰 파문을 일으킨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은 신화나 역사의 형식을 빌리지 않고 동시대의 누드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점에서 외설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했다. 특히 <올랭피아> 속 여성이 관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도발적인 시선은 당시 상류 사회의 위선적인 도덕관을 직설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회화가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도구를 넘어 예술가의 주관적인 태도를 드러내는 매체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마네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전에 열린 인상주의 전시회에는 단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는 살롱전이라는 공식적인 체제 안에서 혁신을 인정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클로드 모네, 에드가 드가, 베르트 모리조 등과 깊은 친분을 유지하며 서로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주고받았다. 만년에는 인상주의의 외광 회화 기법을 일부 수용하여 더욱 밝고 경쾌한 색조의 작품을 남겼으며, <폴리-베르제르의 술집>(1882)과 같은 걸작을 통해 근대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세밀하게 포착했다.
에두아르 마네의 업적은 예술가가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 '모더니즘'의 초석을 놓았다는 데 있다. 그는 역사적, 문학적 서사에 종속되어 있던 회화를 순수한 시각 예술의 영역으로 격상시켰다. 전통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것을 파괴하고 재구성한 그의 실험 정신은 이후 전개되는 수많은 현대 미술 유파의 탄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마네는 서양 미술사에서 근대성의 문을 연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