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은 1826년부터 1918년까지 현재의 독일 튀링겐주와 바이에른주 일대에 존재했던 영방 국가이다. 이 공국은 베틴 가문의 에르네스틴 계열이 통치하였으며, 1826년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작 가문의 단절로 인한 영토 재편 과정에서 성립되었다. 당시 작센코부르크잘펠트 공국의 공작이었던 에르네스트 1세가 잘펠트를 양도하는 대신 고타를 획득하며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첫 번째 통치자가 되었다.
지리적으로 이 국가는 남쪽의 코부르크와 북쪽의 고타라는 두 개의 서로 떨어진 영토로 구성된 동군연합 형태였다. 두 지역은 지리적 거리만큼이나 행정 및 정치 체제에서도 독립성을 유지했다. 각 지역은 별도의 의회와 정부를 유지했으며, 공작은 두 지역의 공동 수장으로서 군림했다. 1852년에는 국가 통합을 위한 공동 헌법이 제정되기도 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두 지역의 독자적인 행정 구조가 폐지되지 않은 채 유지되는 복합적인 국가 형태를 보였다.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은 그 규모에 비해 유럽 왕실사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가문의 일원들은 혼인과 선출을 통해 유럽 전역의 왕좌를 차지했다. 대표적으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이 이 가문 출신이며, 벨기에의 초대 국왕 레오폴 1세 역시 이 가문 사람이었다. 또한 포르투갈과 불가리아의 왕실에도 이 가문의 혈통이 이어졌으며, 영국의 현재 왕조인 윈저 왕가 또한 1917년 명칭을 바꾸기 전까지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었다.
공국의 종말은 제1차 세계 대전의 패배와 함께 찾아왔다. 1918년 독일 혁명이 발생하자 마지막 공작인 카를 에두아르트는 강제로 퇴위당했고 공국은 해체되었다. 이후 실시된 주민투표를 통해 남부의 코부르크는 바이에른주에 편입되었으며, 북부의 고타는 신설된 튀링겐주에 통합되었다. 이로써 92년간 존속했던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의 정치적 실체는 사라졌으나, 그 가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도 유럽 왕실의 역사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