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정우회

유신정우회(維新政友會)는 제4공화국 유신체제 아래서 박정희 대통령의 사실상 지명으로 선출된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원내 교섭단체이자 정치결사체이다.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제정된 후, 1973년 3월 제9대 국회 개원과 함께 공식 발족하였다. 유신헌법 제40조에 따라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이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찬반 토론 없이 일괄 선거로 선출된 인사들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흔히 '유정회'라고 줄여서 부른다.

유정회의 가장 큰 목적은 박정희 대통령의 장기 집권과 유신체제를 법적,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집권 여당인 민주공화당과 함께 국회 내에서 절대 과반수 및 개헌 의결 정족수인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를 통해 야당의 견제와 비판을 무력화하고, 행정부가 입법부를 완벽하게 장악하여 국회를 정부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통과시키는 이른바 '통법부'로 전락시키는 데 핵심적인 도구로 활용되었다.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들의 임기는 일반 지역구 선출직 의원들의 임기(6년)와 달리 3년으로 제한되었다. 이는 대통령이 3년마다 이들의 충성도를 평가하여 재지명 여부를 결정함으로써, 의원들에 대한 청와대의 통제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구성원들은 주로 전직 관료, 군 장성 출신, 친정부 성향의 학자 및 문화예술인, 직능 대표 등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로 채워졌으나,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직접 선거를 거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었다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국회 내에서 유정회는 청와대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하는 행동대 역할을 담당했다. 긴급조치 등 유신정권의 강압적인 통치 방식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야당의 대여 공세나 반유신 투쟁을 앞장서서 차단했다. 유정회 의원들은 독립된 헌법기관으로서의 개인적 소신보다는 조직의 강력한 규율과 대통령의 의중을 최우선으로 따르도록 강제되었으며, 이는 한국 의회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를 상징하는 현상이었다.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되면서 유신정우회는 핵심적인 존립 기반을 상실하게 되었다. 유신체제의 붕괴와 함께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된 유정회는 1980년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제5공화국 헌법 제정과 함께 제10대 국회가 강제 해산되면서 공식적으로 소멸하였다. 유신정우회는 한국 현대사에서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권력 유지를 위해 입법부를 철저히 예속시키려 했던 기형적인 정치 제도의 표본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