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3년은 고려 제4대 국왕 광종의 재위 24년째 되는 해이다. 광종은 이 시기에 강력한 왕권 강화 정책을 마무리하며 중앙 집권적 국가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과거 제도의 정착과 노비안검법의 시행으로 구공신 세력과 호족들의 힘이 약화되었으며, 왕권을 중심으로 한 관료 체계가 안정화 단계에 접어든 시기였다.
중국 대륙에서는 송나라 태조 조광윤이 오대십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통일 제국을 완성해 나가던 과정에 있었다. 송나라는 문치주의를 표방하며 중앙 집권적 통치 기구를 정비하였고, 973년에는 과거 시험의 최종 단계인 전시(殿試) 제도를 도입하여 황제가 직접 인재를 선발하는 권한을 확립하였다. 이는 황제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사대부 계층을 국정의 파트너로 삼는 송나라 정치 체제의 기틀이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인 오토 1세가 5월 7일에 사망하였다. 오토 1세는 마자르족의 침입을 격퇴하고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아 제국의 기틀을 세운 인물이다. 그의 사후 아들인 오토 2세가 단독 통치자로 즉위하며 제국을 이어받았다. 오토 2세의 즉위는 신성 로마 제국의 초기 안정성을 시험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유럽의 권력 지형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파티마 왕조가 이집트 카이로로 수도를 완전히 이전하여 통치 기반을 확고히 다졌다. 이와 더불어 중앙아시아의 카레즘 지역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알 비루니(Al-Biruni)가 탄생하였다. 알 비루니는 훗날 수학, 천문학, 지리학, 역사학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업적을 남기며 이슬람 황금기를 빛낸 인물로 평가받게 된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가 지속되고 있었으며, 엔유 천황의 재위 기간 중 연호가 덴로쿠(天禄)에서 덴엔(天延)으로 바뀐 해이기도 하다. 당시 일본 조정 내에서는 후지와라 씨족의 권력이 점차 확대되며 셋칸 정치의 기반이 더욱 강화되고 있었다. 973년은 이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존 체제의 정비와 새로운 지도자의 등장이 교차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