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2

서기 842년은 9세기의 중반으로 넘어가는 시기이며,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정치 체제의 변동과 종교적 전환점이 빈번하게 발생한 해였다. 중동의 아바스 왕조에서는 제8대 칼리파인 알 무타심이 사망하고 그의 아들인 알 와티크가 새로운 칼리파로 즉위하였다. 알 무타심은 투르크 용병 중심의 군사 체제를 확립하며 중앙 집권화를 꾀했으나, 그의 사후 아바스 왕조는 점차 군사 세력의 영향력 확대와 중앙 권력의 약화라는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서유럽의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롤링거 제국의 분열을 가속화하는 중요한 외교적 사건이 일어났다. 서프랑크의 대머리왕 샤를 2세와 동프랑크의 루도비쿠스 2세는 맏형인 로타르 1세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스트라스부르 서약을 체결하였다. 이 서약은 게르만어(고대 고지 독일어)와 로망스어(고대 프랑스어)로 각각 기록되어, 오늘날 프랑스어와 독일어의 초기 형태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헌적 가치를 지닌다. 이는 제국이 언어와 문화적 경계를 따라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수십 년간 지속된 제2차 성상 파괴 운동이 종결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되었다. 성상 파괴를 지지했던 황제 테오필로스가 1월에 사망하자, 그의 어린 아들 미하일 3세를 대신해 섭정을 맡은 황후 테오도라가 성상 공경의 부활을 선언하였다. 이로써 제국 내부의 극심한 종교적 갈등이 일단락되었으며, 동방 정교회의 신학적 전통이 확고히 정립되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이 사건은 이후 정교회에서 '정교회의 승리'라는 축일로 기념될 만큼 역사적 비중이 크다.

티베트(토번) 역사에서는 제국의 붕괴를 초래한 결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불교를 박해하며 제국을 통치했던 랑다르마 왕이 불교 승려에게 암살당하였다. 왕위 계승권을 둘러싼 내부 분열과 암살 사건 이후 토번 제국은 급격한 혼란기에 접어들었으며, 통일 국가로서의 지위를 잃고 여러 지방 세력으로 갈라지는 이른바 '분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는 중앙아시아의 강자로 군림하던 토번의 영향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시점이 되었다.

동아시아의 당나라는 무종의 통치 아래 불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인 '회창폐불'의 서막이 올랐다. 무종은 도교를 숭상하며 불교 사원의 재산을 몰수하고 승려들을 강제로 환속시키는 정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한편 신라에서는 장보고가 암살된 이후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권이 흔들리고 중앙 귀족 간의 권력 다툼이 지속되면서 지방 통제력이 점차 약화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일본에서는 황태자 자리를 둘러싼 정치적 음모인 조와의 변이 일어나 후지와라 가문이 권력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