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

1696년은 그레고리력으로 일요일에 시작하는 윤년이며, 단기 4029년, 조선 숙종 22년에 해당한다. 17세기 말엽의 이 시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치적 권력 구조의 변화와 과학적 진보가 두드러지게 나타난 해였다. 유럽에서는 과학 혁명의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학적 발견이 이루어졌고, 러시아에서는 제정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동아시아에서는 국경과 영토에 대한 인식이 재확인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조선 역사에서 1696년은 독도 및 울릉도의 영유권과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해로 기록된다. 동래 출신의 어부 안용복이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강력하게 주장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안용복의 활동과 조선 조정의 외교적 노력 결과, 일본 에도 막부는 1696년 1월(음력) '죽도(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렸다. 이는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인정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독도 영유권 분쟁에서 한국 측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역사적 근거가 된다.

러시아 역사에서도 이 해는 표트르 대제의 단독 통치가 시작된 분기점이다. 1682년부터 표트르 1세와 공동 통치자였던 이복형 이반 5세가 1696년에 사망함에 따라, 표트르 1세는 명실상부한 러시아의 유일한 차르가 되었다. 권력을 완전히 장악한 표트르 1세는 부동항을 얻기 위한 남진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러시아군은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아조프 요새를 함락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아조프 원정의 성공은 러시아 정규 해군 창설의 시발점이 되었으며,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서양의 과학사와 경제사에서도 1696년은 주목할 만한 해이다. 영국의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왕립 조폐국(Royal Mint)의 감사(Warden)로 임명되어 런던으로 이주했다. 그는 당시 위조지폐와 불량 주화로 혼란스러웠던 영국의 통화 체계를 바로잡는 대개주(Great Recoinage) 사업을 주도했다. 수학계에서는 기욤 드 로피탈이 미적분학 교과서인 《무한소 해석(Analyse des Infiniment Petits)》을 출간했다. 이 책에는 요한 베르누이가 발견한 극한 계산법인 '로피탈의 정리'가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으며, 요한 베르누이는 같은 해 6월에 '최단강하선(brachistochrone) 문제'를 제기하여 당시 유럽 최고의 수학자들을 자극했다.

한편, 1696년은 북유럽과 동유럽 일부 지역에 큰 시련을 안겨준 해이기도 했다.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스웨덴 등지에서는 1695년부터 시작된 '대기근(Great Famine)'이 1697년까지 이어지며 정점에 달했다. 특히 핀란드에서는 전체 인구의 3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이 기아와 질병으로 사망하는 참혹한 사태가 벌어졌다. 또한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국왕 얀 3세 소비에스키가 사망함으로써, 동유럽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