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5년은 7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해로, 육십갑자로는 을미년(乙未年)이다. 한국사에서는 통일신라 효소왕 4년, 중국사에서는 무주(武周)의 측천무후가 통치하던 시기로 연호는 증성(證聖) 원년 혹은 만세통천(萬歲通天) 원년에 해당하며, 일본사에서는 아스카 시대의 지토 천황 9년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 각국이 내부적으로는 왕권과 중앙 집권 체제를 강화하고 대외적으로는 상호 교류와 견제를 지속하던 시점이다. 또한 서양에서는 비잔티움 제국에서 황제 폐위 사건이 발생하는 등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신라에서는 제32대 국왕인 효소왕이 재위하던 시기로, 통일 이후 국가 경제의 규모가 커짐에 따라 상업 활동이 활발해진 해이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에 따르면 695년에 서시(西市)와 남시(南市)를 새로 설치하였다. 이는 기존에 존재하던 동시(東市)만으로는 늘어나는 경주(서라벌)의 인구와 물동량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음을 의미한다. 시장의 증설은 신라의 수도가 정치적 중심지를 넘어 거대 상업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며, 왕실이 상업을 통제하고 세원을 확보하려 했던 정책적 의도도 내포하고 있다.
중국은 당나라가 일시적으로 단절되고 측천무후가 세운 무주(武周)가 이어지던 때였다. 695년 측천무후는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칭호를 더하고 연호를 변경하는 등 황제로서의 위상을 과시하였다. 당시 무주는 서쪽으로 토번(티베트)과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있었으며, 왕효걸 등의 장군을 파견하여 토번을 공격하기도 했다. 이 해는 거란의 이진충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696년 영주 반란) 직전의 시기로, 동북방 변경 지역에서는 불안한 정세가 감지되고 있었다. 이는 훗날 발해 건국의 간접적인 배경이 되는 혼란기가 도래하기 직전의 상황이었다.
서양사, 특히 비잔티움 제국(동로마 제국) 역사에서 695년은 '20년의 혼란기'가 시작되는 기점이 되는 해이다.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2세의 가혹한 통치와 증세 정책에 반발하여 군사 반란이 일어났고, 레온티우스가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었다. 이 과정에서 유스티니아누스 2세는 코가 잘리는 형벌(비형)을 받고 크림 반도의 케르손으로 유배되었다. 이 사건은 비잔티움 제국 내의 정치적 불안정을 극대화시켰으며, 이후 제국은 잦은 황제 교체와 내전에 시달리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지토 천황이 694년에 후지와라쿄(등원경)로 천도한 직후, 새로운 도성 체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하던 해였다. 695년 일본 조정은 토지 조사와 호적 정리를 위한 준비를 진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훗날 다이호 율령 반포의 기반이 되었다. 문화적으로는 동아시아 전역에 불교가 융성하여, 신라와 일본, 무주 간의 승려 왕래와 불경 전파가 지속되었고, 사찰 건축과 불교 미술 양식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진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