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7

1697년은 17세기 후반에 속하는 평년으로, 그레고리력으로는 화요일에 시작하고 율리우스력으로는 10일 늦은 금요일에 시작하는 해이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유럽의 장기간에 걸친 전쟁이 마무리되고, 러시아가 서구화를 향한 결정적인 행보를 시작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원주민의 마지막 독립 왕국이 멸망하는 등 세계사적 전환점이 되는 사건들이 다수 발생했다.

유럽에서는 9년 전쟁(대동맹 전쟁)을 종결짓는 레이스베이크 조약(Treaty of Ryswick)이 9월과 10월에 걸쳐 체결되었다. 이 조약은 프랑스의 루이 14세와 아우크스부르크 동맹(잉글랜드, 스페인, 신성 로마 제국 등) 사이에 맺어진 것으로, 프랑스는 점령했던 영토의 상당 부분을 반환해야 했다. 또한 루이 14세는 명예혁명으로 즉위한 윌리엄 3세를 잉글랜드의 합법적인 국왕으로 인정하고, 제임스 2세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프랑스의 팽창주의가 일시적으로 저지되고 유럽 내 세력 균형이 재편되는 결과를 낳았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스페인 제국에 의한 정복 역사의 중요한 마침표가 찍혔다. 1697년 3월 13일, 과테말라 페텐 지역에 위치한 이트사(Itza) 마야의 수도인 타야살(Tayasal, 노흐페텐)이 스페인 정복자 마르틴 데 우르수아(Martín de Ursúa)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함락되었다. 타야살은 스페인의 침략을 피해 고립된 섬 요새에서 명맥을 유지하던 최후의 마야 독립 국가였다. 이 도시의 함락은 1517년 시작된 스페인의 메소아메리카 정복 과정이 약 180년 만에 실질적으로 완료되었음을 의미한다.

동유럽의 러시아 차르국에서는 표트르 1세(대제)가 주도한 '대사절단(Grand Embassy)'이 서유럽으로의 긴 여정을 시작했다. 3월에 출발한 이 사절단은 오스만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동맹을 결성하고 서유럽의 선진 기술을 도입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 표트르 1세는 신분을 숨기고 사절단에 합류하여 네덜란드와 잉글랜드 등지에서 조선술, 군사학, 도시 계획 등을 직접 배웠다. 비록 외교적 동맹 결성에는 실패했으나, 이때 습득한 기술과 지식은 훗날 러시아의 급격한 서구화 개혁과 강대국으로의 도약에 결정적인 밑거름이 되었다.

문화 및 동아시아 역사에서도 1697년은 의미 있는 기록을 남겼다. 프랑스의 작가 샤를 페로는 《거위 어미 이야기(Histoires ou contes du temps passé)》를 출간하여 '신데렐라', '잠자는 숲속의 미녀', '장화 신은 고양이' 등 구전되던 민담을 문학적으로 정립, 동화 장르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편 조선에서는 숙종 23년에 해당하며, 당시 조정은 갑술환국(1694) 이후 남인이 몰락하고 서인(노론과 소론)이 정국을 주도하던 시기였다. 이해에는 제주도민 김대황 등이 표류 끝에 베트남과 일본 등을 거쳐 귀환하여 당시 아시아 해역의 정세를 보고한 기록이 실록에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