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4

1694년은 17세기의 막바지에 해당하는 해로, 그레고리력으로는 금요일, 율리우스력으로는 월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이 시기는 서구권에서 근대적 경제 체제와 국가 기틀이 마련되던 시기였으며, 동양에서는 기존의 전제 군주제가 공고히 유지되는 가운데 내부적인 정치 지형의 변화가 활발히 일어났던 때였다. 세계 각지에서는 왕권의 향방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대한 사건들이 잇따랐다.

조선에서는 숙종 20년에 해당하는 해로, 한국사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인 갑술환국(甲戌換局)이 발생하였다. 기사환국으로 정권을 장악했던 남인 세력이 권력에서 밀려나고 서인 세력이 다시 집권하게 된 이 사건을 통해, 폐위되었던 인현왕후가 왕비로 복위되었으며 희빈 장씨는 다시 빈의 작위로 강등되었다. 갑술환국은 조선 후기 당쟁의 양상을 더욱 격화시켰으며, 숙종의 왕권 강화책인 환국 정치가 정점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영국(잉글랜드 왕국)에서는 현대 금융 시스템의 초석이 된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이 설립되었다. 윌리엄 3세는 프랑스와의 지속적인 전쟁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민간 자본을 활용한 중앙은행의 설립을 허가하였다. 이는 정부 부채를 제도화하고 국채 시장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영국의 경제적 패권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같은 해 12월에는 윌리엄 3세와 공동 통치자였던 메리 2세가 천연두로 서거하면서 윌리엄 3세의 단독 통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14세에 맞서 결성된 아우크스부르크 동맹과 프랑스 사이의 9년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전쟁의 장기화로 인해 각국은 극심한 재정난과 기근에 시달렸으며, 특히 프랑스는 해상권 전쟁에서 밀려나며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되었다. 이러한 전쟁 상황은 유럽 국가들이 군사적 혁신뿐만 아니라 징세 체제와 행정 조직을 정비하도록 강요하는 배경이 되었다.

문화와 사상 측면에서는 프랑스의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Voltaire)가 11월 21일에 태어났다. 그는 훗날 이성과 자유, 관용의 가치를 설파하며 유럽 지성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한편 일본에서는 에도 시대의 전설적인 하이쿠 시인 마츠오 바쇼가 오사카에서 향년 5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그는 '오쿠노 호소미치' 등의 작품을 통해 일본 문학의 독자적인 경지를 개척한 인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