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6년은 17세기 후반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동아시아와 유럽 등지에서 국가 간의 영토 확정과 군주들의 권력 재편이 일어난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이다. 한반도에서는 조선 숙종 재위 22년 차였으며, 중국 청나라에서는 강희제가 통치하고 있었다. 유럽에서는 절대왕정이 절정에 달한 가운데, 각국이 영토와 해상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과 군사적 충돌을 벌이던 때였다.
한국사에서 1696년은 울릉도와 독도의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확고히 한 매우 의미 있는 해이다. 1693년에 있었던 안용복의 1차 도해 이후 조선과 일본 간에 울릉도의 귀속 문제를 두고 외교적 마찰이 있었으나, 1696년 1월 일본 에도 막부는 최종적으로 울릉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인정하고 자국 어민들의 도해를 전면 금지하는 지시를 내렸다. 민간인 출신이었던 안용복은 같은 해 5월 다시 일본 돗토리번으로 건너가(2차 도해), 울릉도와 자산도(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재차 주장하고 막부의 도해 금지 조치를 어긴 일본 어민들을 처벌해 줄 것을 요구하는 등 영토 수호에 큰 공을 세웠다.
중국 청나라에서는 강희제가 몽골 지역의 패권을 두고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몽골 고원 서부에서 발흥한 준가르 칸국의 갈단 보슈그투 칸이 세력을 확장하며 청나라를 위협하자, 강희제는 직접 대군을 이끌고 친정에 나섰다. 1696년 6월 벌어진 조모도(Jao Modo) 전투에서 청나라 군대는 준가르 군대를 크게 격파했다. 이 승리로 갈단의 세력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청나라는 외몽골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고히 다지고 제국의 영토를 몽골 고원 깊숙이 확장할 수 있었다.
유럽의 러시아에서는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가 명실상부한 단독 통치자로 등극하며 러시아 제국의 근대화와 팽창을 본격화했다. 1696년 초, 그와 함께 공동 차르로 즉위했던 이복형 이반 5세가 사망함에 따라 표트르 1세는 유일한 군주가 되었다. 권력을 장악한 표트르는 오스만 제국을 상대로 한 제2차 아조프 원정을 주도했다. 새로 창설된 함대를 동원해 육해공 합동 작전을 펼친 끝에 오스만 제국의 아조프 요새를 함락시켰으며, 이는 러시아가 내륙국의 한계를 벗어나 흑해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해군력을 갖추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서유럽에서는 프랑스의 루이 14세 팽창 정책에 맞서 결성된 아우크스부르크 대동맹 주도의 '9년 전쟁'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해에 사보이아 공국이 동맹을 이탈하여 프랑스와 토리노 조약을 맺음으로써 유럽의 세력 균형에 변화가 생겼다. 한편 잉글랜드에서는 과학자 아이작 뉴턴이 왕립 조폐국 감사(Warden of the Mint)로 임명되는 흥미로운 사건이 있었다. 뉴턴은 당시 영국 경제를 심각하게 위협하던 화폐 위조범들을 과학적인 수사 기법으로 소탕하고, 국가의 은화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대규모 화폐 개주(Great Recoinage) 작업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며 경제 질서 회복에 크게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