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7

1457년은 율리우스력으로 토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5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는 동아시아와 유럽 모두에서 굵직한 정치적 격변과 왕조의 권력 투쟁, 그리고 새로운 문화적 기록들이 역사에 등장했다. 조선과 명나라에서는 왕위를 둘러싼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정변이 일어났으며, 유럽에서는 각 지역의 군주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거나 새로운 제도를 정비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양상이 나타났다.

한국사에서 1457년(조선 세조 3년)은 왕실의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 있던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로 유배되었다. 같은 해 가을, 경상도 순흥에 유배되어 있던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의 여파로 금성대군은 사약을 받았고, 단종 역시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재차 강등된 후 17세의 어린 나이에 영월에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이로써 세조는 자신의 왕위 계승에 위협이 되는 가장 큰 정치적 적수를 완전히 제거하게 되었다.

동아시아의 이웃 국가들에서도 중대한 정치적, 사회적 변동이 있었다. 명나라에서는 '탈문의 변(奪門之變)'이라 불리는 정변이 일어났다. 토목의 변으로 오이라트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온 후 태상황으로 유폐되어 있던 정통제가, 동생인 경태제가 병상에 누운 틈을 타 무리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황제로 복위하며 천순제(天順帝)가 되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무로마치 시대에 홋카이도 남부 지역에서 아이누족의 지도자 코샤마인이 와진(和人, 본토 일본인)의 경제적 착취와 억압에 반발하여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킨 '코샤마인의 전투'가 발생했다.

유럽 역사에서도 1457년은 흥미로운 기록들을 남겼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2세가 의회를 통해 축구와 골프를 금지하는 법령을 내렸는데, 이는 백성들이 국방에 필수적인 군사 훈련인 궁술 연습을 게을리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금지령은 역사상 '골프(Golf)'라는 단어가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 기록으로 남아있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훗날 소설 드라큘라의 모티브가 된 블라드 3세(블라드 체페슈)가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로 두 번째 즉위한 직후(1456년 즉위), 트란실바니아 지역을 공격하는 등 본격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다지고 반대파를 숙청하는 엄격한 통치를 이어가고 있었다.

문화와 종교적 측면에서도 중요한 발자취가 남은 해였다. 신성 로마 제국 영토였던 보헤미아(현재의 체코)에서는 얀 후스의 사상을 따르는 후스파의 일파인 '보헤미아 형제단(Unitas Fratrum)'이 창설되어 훗날 개신교 교단인 모라비아 교회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독일 마인츠에서는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동업자였던 요한 푸스트와 페터 쇠퍼가 《마인츠 시편(Mainz Psalter)》을 인쇄하여 출판했다. 이 책은 구텐베르크 성경에 이어 유럽에서 금속 활자로 인쇄된 주요 서적 중 하나로, 출판 연월일과 인쇄업자의 이름이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인쇄물이라는 점에서 세계 출판사에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