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6

1456년은 15세기 중반의 평년으로,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중대한 정치적 전환점과 군사적 충돌이 발생한 시기이다. 조선에서는 왕권 강화를 둘러싼 내부 갈등이 극에 달했으며, 유럽에서는 오스만 제국의 팽창에 맞선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또한 강력한 자연재해와 천문 현상이 기록되어 인류 역사에 중요한 기록을 남긴 해이기도 하다.

조선 왕조에서는 세조 2년에 해당하며, 단종 복위 사건인 이른바 '사육신 사건'이 발생했다.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응부, 유성원 등 집현전 출신 학자들과 무신들이 수양대군에 의해 폐위된 단종을 다시 왕위로 복귀시키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이 사건 이후 세조는 집현전을 폐지하고 경연을 중단시키는 등 전제 왕권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했으며, 이는 조선 초기 정치 구조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유럽에서는 7월에 발생한 베오그라드 공성전이 역사적 분기점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흐메트 2세가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이후 유럽 내륙으로 진격했으나, 헝가리의 명장 야노슈 후냐디가 이끄는 군대에 패배하며 퇴각했다. 이 승리는 오스만 제국의 유럽 중심부 진출을 수십 년간 저지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교황 칼릭스투스 3세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 기독교 세계에 정오의 종을 울리도록 명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왕국에서는 12월에 강력한 지진이 발생하여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캄파니아와 아브루초 지역을 중심으로 발생한 이 지진은 당시 중세 유럽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지진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내고 도시의 건축물들을 붕괴시켰다. 이 재난은 당시 이탈리아 반도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도시 재건 과정에서 건축 양식의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다.

천문학적으로는 핼리 혜성이 지구 근처를 통과하며 관측된 해이다. 당시 혜성의 출현은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전쟁이나 전염병과 같은 불길한 징조로 해석되기도 했으나, 천문 관측 기록으로서 후대의 과학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 또한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의 금속 활자 인쇄본인 '42행 성서'가 보급되기 시작하며 지식 전달 체계의 혁명이 막 시작되던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