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3년은 율리우스력의 일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며, 12세기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시기 전 세계는 다양한 정치적, 종교적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동아시아에서는 국가 간의 패권 다툼과 내부 정쟁이 치열하게 전개되었고,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대관식과 교황권의 대립 등 굵직한 사건들이 발생했다. 또한 십자군 전쟁의 여파로 중동 지역의 군사적 긴장감도 지속되고 있었다.
한국의 고려 시대에서는 인종(仁宗) 11년에 해당하는 해이다. 이 시기 고려 조정은 이자겸의 난(1126년)이 진압된 이후 실추된 왕권을 회복하고 내부 기틀을 다지기 위해 고심하던 중이었다. 특히 승려 묘청(妙淸)과 정지상(鄭知常) 등을 중심으로 한 서경(평양) 천도 운동이 본격적으로 힘을 얻기 시작한 시점이다. 묘청 일파는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수도를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고, 금나라를 정벌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종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는 2년 뒤인 1135년에 일어날 묘청의 난을 잉태하고 있던 정치적 격동기였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로타르 3세(Lothair III)가 로마의 라테라노 대성당에서 교황 인노첸시오 2세(Innocentius II)로부터 황제 대관식을 치렀다. 로타르 3세는 대립 교황 아나클레토 2세와 갈등을 빚고 있던 인노첸시오 2세를 지원하기 위해 이탈리아로 군대를 이끌고 내려가 이 대관식을 성사시켰다. 잉글랜드에서는 헨리 1세 치하에서 종교적, 건축적 발전이 있었다. 잉글랜드 북부에 칼라일(Carlisle) 교구가 새롭게 창설되었으며, 엑서터 대성당(Exeter Cathedral)의 건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이기도 하다.
중국 대륙에서는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와 한족의 남송(南宋) 간의 대립이 지속되고 있었다. 북송이 정강의 변(1127년)으로 멸망한 후 강남으로 쫓겨난 남송은 고종(高宗)의 통치 아래 국가의 기틀을 재건하고 금나라의 위협에 맞서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주력했다. 이 시기 동아시아의 패권은 급격히 금나라 쪽으로 기울고 있었으며, 이는 주변국인 고려의 외교 정책에도 직접적인 압박으로 작용하며 동아시아 국제 질서의 재편을 강제하고 있었다.
중동 지역에서는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 왕국과 주변 이슬람 세력 간의 영토 분쟁이 이어졌다. 당시 예루살렘의 국왕이었던 풀크(Fulk)는 십자군 국가들의 군사적 방어를 강화하고 이슬람 군대의 공세에 맞서 십자군 영지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이 시기 시리아 일대에서는 장기(Zengi) 왕조 등 이슬람 세력이 점차 힘을 결집하며 십자군을 압박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는 향후 에데사 백국의 멸망과 제2차 십자군 원정의 도화선이 되는 지정학적 긴장 상태를 조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