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

1126년은 12세기의 26번째 해이며, 육십갑자로는 병오년(丙午年)에 해당한다. 이 해는 동아시아 역사, 특히 고려와 중국 대륙의 정세에 있어 거대한 격변이 일어난 시기로 기록된다. 고려에서는 문벌 귀족 사회의 모순이 폭발한 사건이 발생했고, 중국에서는 송나라가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의해 멸망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사건이 전개되었다.

고려에서는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이자겸이 일으킨 '이자겸의 난'이 발발했다. 인종의 외조부이자 장인이었던 이자겸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비대해진 권력을 휘둘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인종이 측근들과 함께 이자겸을 축출하려 시도했으나, 이자겸은 무장 척준경과 결탁하여 군사적 반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고려의 정궁인 연경궁을 비롯한 주요 궁궐이 불타 소실되었으며, 왕의 권위는 크게 손상되었다. 비록 난은 이후 이자겸과 척준경의 내분을 이용한 인종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이 사건은 고려 전기 문벌 귀족 사회의 붕괴를 알리는 서막이 되었다.

중국 대륙에서는 '정강의 변'으로 이어지는 송나라(북송)의 몰락 과정이 1126년에 본격화되었다. 금나라 군대는 송나라의 수도인 개봉(카이펑)을 포위하고 맹공을 퍼부었다. 송나라 흠종은 금나라의 요구에 굴복하여 막대한 배상금을 약속하고 영토를 할양해야 했다. 이해 말, 금나라 군대는 개봉을 함락시켰고, 이는 이듬해 초 휘종과 흠종 두 황제가 포로로 잡혀가는 치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북송이 사실상 멸망하고 남송 시대로 넘어가는 역사적 분기점이 바로 이 해에 형성되었다.

이 해에 발생한 사건들은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는 계기가 되었다. 금나라가 송나라를 압도하며 중원의 새로운 패자로 등극함에 따라, 고려 역시 금나라와의 사대 관계를 수용해야 하는 외교적 현실에 직면했다. 또한 이자겸의 난으로 인한 개경 궁궐의 소실은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는 훗날 개경의 지덕이 다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여 서경(평양) 천도 운동과 묘청의 난이 일어나는 풍수지리적, 정치적 명분을 제공하기도 했다.

서양사에서는 이베리아반도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 1126년, 알폰소 7세가 레온과 카스티야의 왕으로 즉위했다. 그는 이후 스페인의 황제를 자칭하며 기독교 왕국들을 통합하고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세계사적 관점에서 1126년은 유목 민족 왕조인 금나라의 힘이 전통적인 정주 농경 국가인 송나라를 압도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더 크게 주목받는다. 요나라를 멸망시킨 뒤 송나라마저 유린한 이 해의 정세 변화는 이후 몽골 제국이 등장하기 전까지 동아시아 역사의 흐름을 규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