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년은 서기 2세기에 해당하는 평년으로, 율리우스력으로는 금요일에 시작된다. 이 해는 로마 제국과 동아시아의 한나라, 그리고 한반도의 삼국 시대 초기 상황을 아우르는 역사적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서구사에서는 유대 지역의 운명을 결정지은 중대한 군사적 사건이 종결된 해로 평가받는다.
로마 제국에서는 하드리아누스 황제 통치기였으며, 132년부터 이어진 '바르 코크바의 난'(제3차 유대-로마 전쟁)이 최종적으로 진압되었다. 유대인들의 지도자 시몬 바르 코크바는 로마 군단에 맞서 격렬히 저항했으나, 135년 여름 베타르 요새가 함락되면서 반란은 종결되었다. 이 과정에서 수십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이들은 노예로 팔려 가거나 본토에서 추방당했다.
반란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강경한 조치를 단행했다. 유대 속주의 명칭을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변경하였으며, 파괴된 예루살렘 부지에 로마식 도시인 '아엘리아 카피톨리나'를 건설했다. 또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출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유대 민족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현상이 가속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후한의 순제가 재위하던 시기였다. 후한 조정은 환관과 외척 세력 사이의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내부적 문제를 안고 있었으나, 서역과의 교류를 통해 문화적 성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시기 한나라는 지방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농지 개간을 장려하는 등 제국의 안정화를 꾀했으나, 변방에서는 이민족과의 소규모 충돌이 지속되었다.
한반도에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각각 국가의 기틀을 다지던 시기였다. 신라에서는 지마 이사금 24년에 해당하며, 기록에 따르면 이해 여름에 말갈이 북쪽 경계를 침범하여 대규모 약탈을 자행했다. 신라 조정은 이에 대응하여 군사를 파견하고 방어 체계를 점검했다. 백제에서는 개루왕이 재위하며 영토 방어에 주력했고, 고구려에서는 태조대왕이 장기 집권을 이어가며 중앙 집권적 통치력을 강화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