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금정(胡錦濤, 후진타오)은 중화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02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를,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주석을 역임한 인물이다. 1942년 장쑤성 타이저우에서 태어난 그는 칭화 대학교 수리공정계에서 수력 발전 전공으로 졸업하였으며, 대학 시절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기술 관료로서의 경력을 시작하였다. 그는 중국 지도부 내에서 소위 '제4세대 지도부'를 상징하는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계 입문 초기에는 간쑤성 건설위원회에서 실무를 익혔으며, 1980년대 초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의 주요 보직을 거치며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구이저우성 서기와 티베트 자치구 당위원회 서기를 지내며 지방 행정의 수장으로서 정치적 역량을 증명했다. 특히 티베트 재임 시절 발생한 소요 사태를 강력하게 수습하며 중앙 정부의 신임을 얻었고, 이를 계기로 1992년 제14차 당대회에서 덩샤오핑에 의해 차세대 지도자로 발탁되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파격 승진하였다.
2002년 제16차 당대회에서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그는 '과학적 발전관'과 '화해사회(조화사회)' 건설을 주요 통치 철학으로 내세웠다. 이는 덩샤오핑과 장쩌민 시대를 거치며 가속화된 경제 성장의 이면에서 발생한 빈부 격차, 지역 불균형, 환경 파괴 등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모습보다는 집단지도체제를 존중하며 신중하고 온건한 지도 스타일을 견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중국은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하며 세계 2위의 경제 대국(G2)으로 부상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중국의 국력을 세계에 과시했고, 글로벌 금융 위기 속에서도 높은 성장률을 유지하며 세계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외교적으로는 '화평굴기(평화로운 부상)'를 표방하며 국제 사회와의 마찰을 피하고 협력을 강조하는 정책을 취했다.
2012년 제18차 당대회를 끝으로 그는 시진핑에게 당 총서기직과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을 동시에 물려주며 퇴임했다. 이는 전임 지도자가 일부 직위를 유지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관례에서 벗어나 전권을 한 번에 이양한 사례로 주목받았다. 호금정의 통치기는 중국이 양적 팽창을 넘어 질적 성장을 고민하던 시기로, 국가 현대화의 기틀을 공고히 다진 기간으로 기록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