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비 신씨(廢妃 慎氏, 1476~1537)는 조선 제10대 국왕인 연산군의 왕비이다. 본관은 거창(居昌)이며, 영의정을 지낸 거창부원군 신승선의 딸이다. 어머니는 세종의 아들인 임영대군의 딸 중모현주 이씨로, 신씨는 왕실과 가까운 혈연관계를 맺고 있었다. 1487년(성종 18년) 세자빈으로 간택되어 연산군과 혼인하였으며, 1494년 연산군이 즉위함에 따라 왕비에 책봉되었다.
신씨는 성품이 어질고 덕이 높았으며, 검소한 생활을 실천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다. 연산군이 재위 기간 중 폭정을 일삼고 기행을 반복할 때마다 눈물로 간하며 이를 만류하고자 노력하였다. 비록 연산군이 그녀의 간언을 직접적으로 수용하지는 않았으나, 평소 신씨의 어진 성품을 존중하여 그녀에게만은 예우를 갖추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씨는 내명부를 다스림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인자한 태도를 유지하여 궁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1506년 중종반정이 일어나면서 연산군이 폐위되자 신씨 역시 왕비의 지위를 잃고 폐비가 되었다. 당시 반정 세력은 연산군의 측근들을 엄중히 처벌하였으나, 신씨에 대해서는 그녀가 평소 보여준 덕행과 폭정을 막으려 했던 노력을 참작하여 관대한 처분을 내렸다. 신씨는 거창군부인(居昌郡夫人)으로 강등되어 사가로 물러났으며, 강화도로 유배를 떠나게 된 연산군과 이별하게 되었다.
폐위된 이후 신씨는 정릉 인근의 사가에서 조용히 여생을 보냈다. 중종은 신씨의 인품을 높이 평가하여 그녀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가옥과 식량을 지원하며 예우를 다하였다. 또한 신씨의 친정 가문이 반정 과정에서 화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에 대한 배려는 지속되었다. 1537년(중종 32년) 62세를 일기로 사망하였으며, 묘소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는 연산군묘 옆에 나란히 조성되었다. 신씨는 비운의 역사를 겪은 왕비였으나, 그 성품과 행실 덕분에 후대 사가들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