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6년은 서력 기원으로 6세기 초반에 해당하며, 육십갑자로는 병술년(丙戌年)이다. 단군기원으로는 2839년이다. 이 시기는 동아시아에서는 삼국시대의 각축전과 중국 남북조의 대립이 이어졌고, 서양에서는 서로마 제국 멸망 후 게르만족의 왕국들이 정착하고 동로마 제국이 세력을 유지하던 시기였다.
한반도 역사에서 506년은 백제 무령왕 6년, 신라 지증왕 7년, 고구려 문자명왕 16년에 해당한다. 특히 『삼국사기』 백제본기 기록에 따르면 이해는 백제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시기였다. 봄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으며, 3월부터 5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극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이 굶주려 서로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졌고, 이를 피해 고구려로 망명하는 자들이 속출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반면 신라 지증왕은 이 시기 국호를 '신라'로 확정하고 왕권을 강화하며 국가 기틀을 다지는 과정에 있었다.
유럽 역사, 특히 법제사적으로 506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서고트 왕국의 국왕 알라릭 2세(Alaric II)는 이 해 2월 2일, 왕국 내 로마계 주민들을 통치하기 위해 『알라릭 법전』(Breviarium Alaricianum 또는 Lex Romana Visigothorum)을 공포했다. 이는 로마법의 주요 내용을 발췌하고 정리한 것으로, 프랑크 왕국과의 전쟁을 앞두고 로마계 주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이 법전은 훗날 11~12세기 로마법이 부활하기 전까지 서유럽에서 로마법의 명맥을 잇는 가장 중요한 문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 사이에서는 502년부터 지속된 '아나스타시우스 전쟁'이 506년에 일단락되었다. 동로마 황제 아나스타시우스 1세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7년간의 휴전에 합의했다. 전쟁이 끝난 직후 동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국경 지역의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전략적 요충지인 다라(Dara)에 대규모 요새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훗날 양국 간의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중국은 남북조 시대로, 남조의 양나라 무제(소연)와 북조의 북위 선무제가 대립하던 시기였다. 양나라 무제는 불교를 장려하고 국가 체제를 정비하는 한편, 북위와의 끊임없는 국경 분쟁을 겪고 있었다. 506년 북위에서는 진류왕 원일 등이 양나라에 투항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으며, 양나라는 이를 기회로 북벌을 감행하여 북위의 여러 성을 공격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는 다음 해에 벌어질 대규모 전투인 '종리 전투'의 전초전 성격을 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