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7

1537년은 율리우스력에 따라 월요일로 시작하는 평년이다. 16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이 시기는 동양과 서양 모두에서 각국의 정치적, 종교적 지형이 요동치던 해였다. 유럽에서는 종교개혁의 여파가 계속해서 번져나가며 각국의 왕권과 교황권이 충돌하거나 재편되었고,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신대륙에서는 유럽인들의 정복 활동과 식민 도시 건설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한반도의 조선에서는 중종 치하에서 권신들의 권력 투쟁이 극에 달했다가 급격한 전환을 맞이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역사에서 1537년(중종 32년)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던 권신 김안로가 몰락하고 사사된 해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김안로는 중종의 딸 효혜공주와 혼인한 연성위 김희의 아버지로, 왕실과의 척분과 중종의 총애를 바탕으로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숙청하며 독재에 가까운 권력을 행사했다. 그러나 그의 전횡이 극심해지고 문정왕후의 폐위를 도모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자, 윤원형 등 대립 세력과 중종의 밀조에 의해 체포되어 유배된 후 결국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선 조정은 새로운 정치적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럽 서부의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국왕 헨리 8세의 치세 아래 중대한 왕실의 변화가 있었다. 1537년 10월 12일, 헨리 8세의 세 번째 왕비인 제인 시모어가 국왕이 그토록 염원하던 합법적인 남성 후계자 에드워드 6세를 출산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제인 시모어는 산욕열로 인해 출산 직후 사망하고 말았다. 한편 헨리 8세는 전년도에 발생한 로마 가톨릭 수도원 해산 반대 봉기인 '은총의 순례' 참가자들을 이해에 대대적으로 처형하며, 잉글랜드 국교회를 바탕으로 한 자신의 종교적, 정치적 절대 권력을 더욱 공고히 다졌다.

이탈리아 반도에서는 피렌체 공국의 지배자인 알레산드로 데 메디치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의 죽음 이후 코시모 1세 데 메디치가 17세의 나이로 권력을 승계하였고, 이후 그는 토스카나 대공국을 창설하는 등 피렌체의 중흥을 이끌게 된다. 같은 해, 교황 바오로 3세는 '수블리미스 데우스(Sublimis Deus)'라는 교황 칙서를 반포했다. 이 칙서에서 교황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도 이성을 가진 인간이며 영혼을 소유하고 있으므로, 그들을 노예로 삼거나 재산을 몰수하는 행위를 엄격히 금지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초기 인권 사상의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역사적 문서로 평가받는다.

신대륙에서는 에스파냐 정복자들의 탐험과 식민화가 계속되었다. 1537년 8월 15일, 에스파냐의 탐험가 후안 데 살라사르 이 에스피노사는 파라과이 강 연안에 요새를 건설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파라과이의 수도인 아순시온의 기원이 되었다. 또한 잉카 제국을 정복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그의 동업자 디에고 데 알마그로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칠레 원정에서 큰 소득을 얻지 못하고 돌아온 알마그로가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를 점령하면서, 에스파냐 정복자들 간의 치열한 내전이 본격적으로 촉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