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7년은 조선 성종 18년에 해당하는 해로, 조선 왕조가 유교적 통치 규범을 완성하고 체제를 공고히 다지던 시기였다. 성종의 치세 아래 조선은 국가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을 바탕으로 한 법치주의를 실현하고 있었으며, 홍문관을 통해 사림의 의견을 수렴하는 등 문치주의가 정점에 달했다. 대외적으로는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며 북방 영토의 안정을 도모하였고, 일본 및 명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며 동아시아의 평화적 질서를 유지하였다.
명나라에서는 성화제가 서거하고 그의 아들인 홍치제가 즉위하였다. 성화제 통치 말기의 혼란을 수습하며 등장한 홍치제는 검소한 생활을 실천하고 간신들을 멀리하며 정무에 힘썼다. 그의 통치는 이후 '홍치의 치'라 불리는 명나라의 중흥기를 가져왔으며, 1487년은 이러한 변화의 기점이 된 해였다. 명나라의 정권 교체는 주변국인 조선과의 외교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며, 새로운 황제의 즉위를 알리는 사절이 조선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유럽에서는 영국의 장미 전쟁이 완전히 종결되는 역사적 사건이 발생하였다. 1487년 6월 16일에 벌어진 스토크 필드 전투(Battle of Stoke Field)는 요크 왕조의 잔당들이 튜더 왕조의 헨리 7세에게 도전한 마지막 전투였다. 헨리 7세가 이끄는 국왕군이 승리함으로써 30여 년간 지속된 내전은 마침표를 찍었으며, 튜더 왕조는 잉글랜드 내에서 확고한 지배력을 확립하게 되었다. 이는 영국이 봉건제를 탈피하고 중앙집권적 근대 국가로 나아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해양 탐사 분야에서는 대항해시대의 이정표가 될 항해가 시작되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르톨로메우 디아스는 국왕 주앙 2세의 지시를 받아 아프리카의 남단 해로를 찾기 위한 원정길에 올랐다. 이 항해는 유럽인들에게 미지의 영역이었던 대서양 남부를 가로질러 인도양으로 나아가는 길목을 찾는 것이 목표였다. 1487년에 시작된 이 여정은 이듬해 희망봉 발견으로 이어지며 유럽 탐험가들이 인도로 향하는 직접적인 해상 통로를 개척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메리카 대륙의 아즈텍 제국에서는 테노치티틀란의 거대 신전인 템플로 마요르(Templo Mayor)의 대규모 증축이 완료되어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제8대 황제인 아위초틀의 치세 아래 아즈텍은 영토를 확장하고 제국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1487년의 봉헌식은 제국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수많은 포로를 희생시키는 대규모 인신 공양이 이루어진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아즈텍 제국의 종교적 결속과 군사적 강성함을 상징하는 동시에, 당시 중앙아메리카 문명의 독특한 사회적 구조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