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 웨버(Chris Webber, 본명 Mayce Edward Christopher Webber III)는 미국의 전 프로 농구 선수이자 방송인으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NBA를 대표하는 파워 포워드 중 한 명이다. 208cm의 신장과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갖췄으며, 특히 빅맨임에도 불구하고 가드에 버금가는 볼 핸들링과 패스 센스를 보유하여 다재다능한 포워드의 전형을 제시한 선수로 평가받는다. 미시간 대학교 재학 시절, 제일런 로즈, 주완 하워드 등과 함께 '팹 파이브(Fab Five)'를 결성하여 1학년 때부터 NCAA 결승에 진출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당시 이들이 착용한 헐렁한 농구 바지와 검은 양말은 힙합 문화를 농구 코트에 접목시킨 사례로, 스포츠 패션 트렌드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93년 NBA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올랜도 매직에 지명된 직후 앤퍼니 하더웨이와 트레이드되어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데뷔 첫해 평균 17.5득점, 9.1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신인왕(Rookie of the Year)을 수상, 화려하게 등장했다. 그러나 돈 넬슨 감독과의 전술적 견해차 및 불화로 인해 단 한 시즌 만에 워싱턴 불리츠(현 위저즈)로 이적하게 되었다. 워싱턴 시절에는 대학 동료였던 주완 하워드와 재결합하여 팀을 플레이오프로 이끌기도 했으나, 잦은 부상과 팀 내외의 잡음으로 인해 그의 재능을 완전히 만개시키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웨버의 기량이 절정에 달한 것은 1998년 새크라멘토 킹스로 이적한 이후다. 릭 아델만 감독의 '프린스턴 오펜스' 전술 아래서 그는 팀 공격의 핵심 조율자 역할을 수행했다. 블라디 디박, 페자 스토야코비치, 마이크 비비 등과 함께 유기적이고 화려한 패스 농구를 선보인 당시 킹스는 '코트 위의 지상 최대 쇼(The Greatest Show on Court)'라는 별명을 얻으며 리그 최고의 인기 팀으로 부상했다. 웨버는 이 시기 꾸준히 20득점-10리바운드-5어시스트 이상을 기록하며 올스타 및 All-NBA 팀에 단골로 선정되었다. 특히 2001-2002 시즌에는 서부 컨퍼런스 결승에 진출하여 당대 최강이던 샤킬 오닐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를 상대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를 펼쳤으나, 아쉽게 패배하며 우승의 문턱에서 좌절했다.
2003년 댈러스 매버릭스와의 플레이오프 경기 중 당한 치명적인 무릎 부상은 그의 커리어에 하락세를 가져왔다. 마이크로프랙처 수술을 받고 복귀했으나 예전의 폭발적인 운동 능력은 상실되었다. 이후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로 이적하여 앨런 아이버슨과 듀오를 결성하기도 했고, 디트로이트 피스톤스와 친정팀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를 거쳤으나 2008년 결국 은퇴를 선언했다. 비록 우승 반지는 획득하지 못했으나, 그가 보여준 기술적인 완성도와 농구 지능은 후대 빅맨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은퇴 후 웨버는 NBA 분석가 및 해설가로 활동하며 방송계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다. 대학 시절 발생한 금전 스캔들로 인해 한동안 미시간 대학교와의 관계가 단절되고 기록이 삭제되는 아픔도 겪었으나, 시간이 흐른 뒤 학교 측과 화해하며 명예를 회복했다. 선수 시절 보여준 탁월한 기량과 농구계에 미친 문화적 영향력을 인정받아 2021년 네이스미스 메모리얼 농구 명예의 전당(Naismith Memorial Basketball Hall of Fame)에 헌액되었다. 그의 등번호 4번은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