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빈 이씨(暎嬪 李氏, 1696~1764)는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친모이다. 본관은 전의(全義)이며 찬성 이준철의 딸로 태어났다. 1701년 6세의 어린 나이로 궁녀가 되어 입궐하였으며, 영조의 총애를 받아 1726년 숙의(淑儀)가 되었다. 이후 귀인(貴人)을 거쳐 1730년 영조의 장남인 효장세자가 사망한 뒤, 왕실의 후사를 잇기 위한 기대 속에서 정1품 빈(嬪)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영조와의 사이에서 1남 6녀를 두었으며, 그중 유일한 아들이 훗날 사도세자로 알려진 장헌세자이다. 영빈 이씨는 영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품이 겸손하고 조심스러워 내명부의 귀감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영조와 사도세자 사이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그녀의 삶은 비극적인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사도세자가 정신적 질환을 앓으며 기행과 살인을 저지르는 상황에 이르자, 영빈 이씨는 어머니로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1762년(영조 38년) 임오화변 당시, 영빈 이씨는 조선 역사상 유례없는 결단을 내렸다. 사도세자의 광증이 극에 달해 영조의 목숨과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그녀는 영조를 찾아가 세자의 비행을 고하며 종묘사직을 위해 세자를 처분해달라고 눈물로 간청했다. 이는 아들을 살리려는 모성애보다 국가와 세손(훗날 정조)을 보호해야 한다는 대의명분을 우선시한 결과였다. 이 사건으로 사도세자는 뒤주에 갇혀 사망하게 된다.
아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영빈 이씨는 세손인 정조를 보살피며 여생을 보냈다. 그녀는 사도세자가 죽은 지 2년 뒤인 1764년 경희궁 양덕당에서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영조는 그녀의 죽음을 몹시 애통해하며 직접 제문을 지었고, 후궁의 예우를 넘어서는 극진한 장례를 치르도록 명했다. 그녀의 묘소는 수경원(綏慶園)이라 명명되었으며, 현재 경기도 고양시 서오릉 내에 위치하고 있다.
영빈 이씨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복합적이다.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비정한 어머니라는 시각도 존재하지만, 당시 통제 불능이었던 사도세자의 상태와 왕실의 멸망 위기를 고려할 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내린 비극적 주인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손자인 정조는 즉위 후 할머니인 영빈 이씨의 사당을 선희궁(宣禧宮)이라 하여 정성껏 제사를 받들었으며, 그녀의 행적은 조선 왕실의 비극과 충절을 상징하는 기록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