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4년

764년은 통일신라 경덕왕 23년이자 당나라 대종 광덕 2년, 일본 준닌 천황과 쇼토쿠 천황의 교체기에 해당하는 해다. 이 시기 동아시아는 정치적 격변과 체제 정비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시기였으며, 각국은 내부적인 권력 투쟁과 자연재해로 인한 사회적 불안을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한반도의 통일신라에서는 경덕왕의 재위 후반기로, 신라의 국가 체제 정비와 불교 문화가 정점에 달했던 시기였다. 그러나 화려한 문화적 성취 뒤에는 가뭄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한 민심의 동요가 존재했다. 이해 3월에는 대규모 가뭄이 발생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왕실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불교 행사를 열거나 행정적 대책을 강구하는 등 사회적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일본에서는 '후지와라노 나카마로의 난'(에미노 오시카쓰의 난)이라는 중대한 정치적 정변이 일어났다.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후지와라노 나카마로는 승려 도쿄를 총애하던 효켄 태상천황과 대립하다가 군사를 일으켰으나 결국 실패하고 처형되었다. 이 사건의 결과로 준닌 천황이 폐위되어 아와지로 유배되었고, 효켄 태상천황이 쇼토쿠 천황으로 다시 즉위하는 중조가 이루어지며 일본 조정의 권력 구조가 재편되었다.

당나라는 안사의 난이 완전히 진압된 직후의 혼란을 수습하며 전후 복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대종은 명신 안진경을 형부상서에 임명하는 등 조정의 기강을 세우려 했으나, 국경 지역에서는 토번의 침공이 계속되어 군사적 긴장감이 높았다. 특히 토번은 안사의 난으로 당의 방어력이 약해진 틈을 타 서부 국경을 끊임없이 위협하며 당나라의 대외 정책에 큰 부담을 주었다.

서구 및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칼리프 알 만수르가 신수도 바그다드의 건설과 행정 체계 정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이는 이슬람 제국이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로 거듭나는 중요한 과정이었다. 한편 비잔티움 제국은 콘스탄티누스 5세의 치세 아래 불가리아 왕국과 끊임없는 전쟁을 치르며 영토 방어와 내부 성상 파괴 운동으로 인한 종교적 갈등을 겪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