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

1730년은 조선 왕조 제21대 국왕 영조의 재위 6년째 되는 해였다. 영조는 이 시기 탕평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붕당 정치의 폐해를 억제하고 국왕 중심의 통치 질서를 확립하는 데 주력하였다. 민생 안정을 위해 군역의 부담을 줄이는 논의가 지속되었으며, 서원을 정리하고 사치 풍조를 금지하는 등 사회 전반의 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개혁 조치가 이어졌다. 이는 18세기 조선의 중흥기로 평가받는 영정조 시대의 기틀을 다지는 과정이었다.

청나라에서는 옹정제 재위 8년으로, 황제 독재 체제가 더욱 공고해지던 시기였다. 옹정제는 군기처를 설치하여 국정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였으며, 지정은제의 전국적인 확대를 통해 국가 재정을 안정시켰다. 또한 대외적으로는 준가르 등 유목 세력에 대한 정벌을 지속하며 영토를 확장하였고, 내부적으로는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엄격히 단속하여 중앙집권적 관료 국가의 면모를 완성해 나갔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표트르 2세가 1월에 천연두로 사망하면서 로마노프 왕조의 직계 혈통이 끊기는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에 표트르 대제의 조카인 안나 이바노브나가 여제로 즉위하였다. 즉위 당시 귀족들의 권력 제한 시도가 있었으나 안나 여제는 이를 무력화하고 전제 군주제를 복구하였다. 그녀의 통치와 함께 러시아 조정에는 독일계 관료들의 영향력이 커졌으며, 이는 러시아 내부의 정치적 역학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오스만 제국에서는 9월에 '파트로나 할릴의 반란'이 발생하여 서구화와 문화적 풍요를 상징하던 '튤립 시대'가 종결되었다. 사치스러운 궁정 생활과 대외 전쟁의 실패에 불만을 품은 예니체리와 하층민들이 봉기하여 아흐메트 3세를 폐위시키고 마흐무트 1세를 옹립하였다. 이 사건으로 인해 오스만 제국 내부의 개혁 세력이 위축되었으며, 이슬람 보수주의 세력의 영향력이 다시 강화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서유럽에서는 영국이 로버트 월폴 총리의 주도 아래 의회 정치의 안정과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루이 15세의 친정이 시작된 이후 내부적인 종교 갈등과 재정 문제가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교황 베네딕토 13세가 선종하고 클레멘스 12세가 선출되었으며, 과학과 철학 분야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며 근대적 사고방식이 발전하는 흐름이 지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