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은 18세기의 세 번째 십 년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드는 기점이 된 해로, 전 세계적으로 왕권의 변화와 사회적 격변이 동시에 일어난 시기였다. 서구권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이 점진적으로 확산하며 근대적 사고방식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동양에서는 기존 왕조들이 내치에 집중하며 국가적 안정을 도모하거나 혹은 내부적인 반란으로 체제 변화를 겪기도 했다.
조선에서는 영조 6년에 해당하는 해였다. 당시 영조는 즉위 초기의 불안정한 정국을 수습하고 탕평책을 본격적으로 전개하며 붕당 정치의 폐해를 극복하려 노력했다. 민생 안정을 위해 조세 제도를 정비하고 농업 생산력을 증대시키는 정책을 추진했으며, 이는 훗날 조선 후기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영정조 시대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적으로는 유교적 질서를 공고히 하면서도 실질적인 통치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유럽에서는 러시아 제국의 권력 구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표트르 2세가 사망한 후 표트르 대제의 조카인 안나 이바노브나가 여제로 즉위했다. 그녀의 즉위는 러시아 내부의 귀족 세력과 황권 사이의 복잡한 정치적 갈등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이후 러시아는 독일 출신 관료들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영국에서는 로버트 월폴이 사실상의 초대 총리로서 권력을 공고히 하며 의회 민주주의와 내각 책임제의 기초를 닦고 있었다.
서남아시아의 오스만 제국에서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발생했다. 1730년 파트로나 할릴의 반란이 일어나면서 ‘튤립 시대’라고 불리던 평화와 문화적 번영의 시기가 종말을 고했다. 이 반란으로 인해 술탄 아흐메트 3세가 폐위되고 마흐무트 1세가 즉위했다. 이는 오스만 제국 내에서 서구화 개혁에 대한 보수 세력의 반발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으며, 제국의 군사 및 정치 체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과학과 기술 분야에서는 항해술의 발전에 기여한 중요한 발명이 이루어졌다. 영국의 존 해들리와 미국의 토머스 고드프리가 각각 독립적으로 반사 팔분의(reflecting quadrant)를 발명하여 해상에서 위도를 측정하는 정밀도를 획기적으로 높였다. 또한, 남미의 칠레에서는 발파라이소 대지진과 그로 인한 쓰나미가 발생하여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입혔으며, 이는 당시 기록된 가장 강력한 자연재해 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