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나드 허먼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 1911-1975)은 20세기 영화 음악의 지형을 바꾼 미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이다. 뉴욕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뉴욕 대학교와 줄리아드 학교에서 수학하며 정통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 초기에는 CBS 라디오의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드라마의 배경 음악을 작곡하고 지휘했다. 이때 쌓은 경험은 훗날 그가 극적 긴장감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밑거름이 되었으며, 오손 웰즈와의 인연으로 이어져 영화 '시민 케인'(1941)을 통해 화려하게 영화계에 데뷔했다.

허먼의 경력에서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시기는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의 협업기이다. 1955년 '해리의 소동'을 시작으로 '현기증',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 '사이코', '새' 등 히치콕의 전성기 작품 대다수의 음악을 담당했다. 특히 '사이코'(1960)의 샤워 장면에서 들리는 날카로운 현악기 소리는 영화 음악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순간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히치콕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불안, 강박, 공포를 음악적으로 완벽하게 시각화하며 서스펜스 장르의 음악적 문법을 확립했다.

음악적 양식 면에서 허먼은 당대 할리우드의 주류였던 낭만주의적이고 감상적인 선율 중심의 음악에서 탈피했다. 그는 짧은 동기(motif)를 반복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을 선호했으며, 불협화음과 독창적인 악기 편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예를 들어 '지구 최후의 날'(1951)에서는 전자악기인 테레민을 사용하여 SF 영화의 선구적인 음향을 만들어냈고, '사이코'에서는 오케스트라의 관악기와 타악기를 배제한 채 현악기만으로 차갑고 날카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러한 실험 정신은 영화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악을 넘어 영화의 심리적 구조를 지탱하는 핵심 요소임을 증명했다.

히치콕과의 결별 이후에도 허먼은 프랑수아 트뤼포, 브라이언 드 팔마 등 젊은 감독들과 협업하며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그의 유작은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1976)로, 그는 이 작품의 녹음을 마친 지 불과 몇 시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재즈의 요소를 가미하면서도 특유의 고립감과 우울함을 담아낸 이 사운드트랙은 그의 예술적 깊이를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버나드 허먼의 혁신적인 기법과 철학은 오늘날 대니 엘프먼, 콰이엇 존스 등 수많은 현대 음악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