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5년은 유럽 역사에서 중세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들이 일어난 해였다. 동프랑크 왕국의 국왕 오토 1세는 8월 레히펠트 전투에서 마자르족을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승리는 10세기 초부터 서유럽을 위협하던 마자르족의 약탈적 침공을 종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마자르족이 정착 생활로 전환하여 훗날 헝가리 왕국을 건설하는 배경이 되었다. 또한 이 승리로 오토 1세의 정치적 권위는 절정에 달했고, 이는 훗날 신성 로마 제국이 탄생하는 중요한 기틀이 되었다.
유럽의 또 다른 지역인 잉글랜드 왕국에서는 11월 23일 국왕 에드레드가 사망하고 그의 조카인 에드위그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에드위그의 통치는 시작부터 강력한 귀족 세력 및 교회 지도자들과의 갈등으로 점철되었으며, 이는 잉글랜드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었다. 같은 시기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콘스탄티누스 7세가 통치하며 제국의 문화적 부흥과 행정 체제 정비를 지속하고 있었다.
동아시아의 중국 대륙에서는 오대십국 시대의 혼란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후주의 세종 시영이 통치하고 있었다. 세종은 국가 재정 확보와 경제 활성화를 위해 대대적인 불교 억제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찰이 폐쇄되고 불상과 종이 녹여져 동전인 ‘주원통보’로 주조되었는데, 이를 역사적으로 ‘후주 세종의 폐불’이라 한다. 이러한 정책은 국가 지배력을 강화하고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에서 단행되었다.
한반도의 고려 왕조에서는 제4대 국왕 광종이 재위 6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당시 광종은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개혁을 치밀하게 준비하던 시기였다. 955년 무렵의 고려는 대외적으로 후주와 교류하며 선진 문물을 수용하는 한편, 대내적으로는 중앙 집권적 관료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정치적 기틀을 다지고 있었다. 이러한 준비 과정은 이듬해인 956년에 단행된 노비안검법과 같은 급진적인 개혁의 바탕이 되었다.
전반적으로 955년은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서 강력한 군주들이 등장하거나 기존의 위협 요소가 제거되면서, 중세 중기의 새로운 질서가 태동하던 시기였다. 서구에서는 마자르족의 위협이 사라지며 봉건 제도가 안정기에 접어들었고, 동양에서는 혼란스러운 분열기를 끝내고 통일 제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국가적 개혁과 체제 정비가 활발히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