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준(朴哲俊, 1901년 7월 12일 ~ ?)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황해도 신천군 출신으로, 1919년 전국적으로 전개된 3·1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역 내 만세 시위를 주도하였다. 그는 민족의 주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인물로, 독립운동사에서 황해 지역 항일 투쟁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9년 3월, 박철준은 서울에서 고종의 인산에 참례하고 돌아온 박용운 등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를 계기로 그는 신천 지역에서의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박철준은 동지들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등사하여 배포하고, 주민들에게 시위의 목적과 필요성을 설명하며 참여를 독려하는 등 치밀한 준비 과정을 거쳤다.
1919년 3월 23일, 박철준은 신천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수천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며 독립의 당위성을 선포하였으나, 일본 경찰은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박철준은 주동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으며, 일제에 의해 가혹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이후 박철준은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15일 해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2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최종적으로 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옥고를 치르며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독립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철준의 독립 투쟁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83년 대통령표창을 수여하였으며,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그의 활동은 황해도 지역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평범한 민중이 주체가 되어 일제의 불의에 맞선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받는다. 현재 그의 공적은 독립유공자로서 국가 기록에 보존되어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