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1902)

박용식(朴容植, 1902~1964)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전라북도 김제(金堤) 출신이다. 그는 식민지 시기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조국의 자주독립을 실현하기 위해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과 농민 운동에 헌신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1920년대 후반 박용식은 김제 지역을 중심으로 항일 사회운동을 전개했다. 1927년 민족 협동 전선인 신간회(新幹會)가 창립되자 신간회 김제지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며 민족적 단결과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그는 일제의 식민 수탈 체제 아래서 고통받는 농민들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농민 조합을 조직하고, 소작권 이전 반대 및 소작료 감하 운동을 이끌며 일제의 경제적 착취에 저항했다.

1930년 박용식은 김제 지역의 비밀 결사 조직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소위 '김제 공산당 사건'으로 불리는 검거 선풍에 휘말려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으며, 1931년 5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도 그는 일제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 항일 의지를 굽히지 않고 지하 활동을 이어갔다.

광복 이후 박용식은 조국의 재건을 위해 힘썼으나, 해방 정국의 혼란과 이념 대립 속에서 조용히 생을 보냈다. 그는 1964년 5월 15일 향년 62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그의 생애는 지역 사회를 기반으로 한 풀뿌리 독립운동의 전형을 보여주며, 일제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민중의 삶과 민족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했던 치열한 투쟁의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박용식의 독립운동 공훈을 기리기 위해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는 그가 전개했던 농민 운동과 비밀 결사 활동이 단순한 사회 운동을 넘어 일제 식민 통치의 근간을 흔들고자 했던 독립 투쟁의 일환이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현재 그의 위패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치되어 후세의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