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석(金孝錫, 1894~1966)은 대한민국의 초기 관료이자 정치인으로, 정부 수립 직후 내무부 장관을 지냈으나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넘어간 인물이다. 경상남도 함안 출생이며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과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경무과 등에서 경력을 쌓았다.
해방 이후 김효석은 미군정청 산하의 경찰 간부로 발탁되어 활동하였다. 1946년 경무부 부장 비서관과 경무부 수사국장을 지냈으며,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에는 초대 경찰국장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부 수립 초기 경찰 조직의 기틀을 마련하고 치안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1949년 5월, 그는 제2대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장관 재임 당시 국민보도연맹 결성을 주도하며 좌익 세력 척결과 전향 공작에 앞장섰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과의 갈등 및 정치적 입지 변화로 인해 1950년 2월 내무부 장관직에서 사임하였으며, 이후 대한청년단 최고위원 등 우익 단체의 요직을 거쳤다.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한 뒤 서울에 머물던 중 북한군에 점령당하자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의 월북 과정에 대해서는 자진 월북과 강제 납북이라는 의견이 분분하나, 북한 정권에 합류한 이후 대남 방송에 출연하여 남한 정부를 비판하는 등 체제 선전에 활용되었다. 북한에서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및 비서장 등을 역임하며 활동하였다.
김효석은 1966년 6월 27일 북한에서 사망하였으며, 사후 평양의 재북인사묘릉에 안치되었다. 그는 대한민국 정부의 고위 공직자로서 반공 활동의 선봉에 섰으나, 전쟁이라는 격동기에 북한으로 건너가 정반대의 행보를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의 복합적이고 비극적인 단면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