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은 제2차 세계 대전이 종식된 후 맞이한 첫 번째 해로, 전후 새로운 국제 질서가 수립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1월 10일 영국 런던에서 제1회 국제연합(UN) 총회가 개최되면서 국제 평화 유지를 위한 기구가 본격적으로 가동되었다. 한편으로는 자유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며 냉전 체제의 서막이 오른 해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는 탈식민지화와 전후 처리가 가속화되었다. 윈스턴 처칠은 미국 웨스트민스터 대학에서 '철의 장막' 연설을 통해 소련의 팽창주의를 경고하며 냉전의 시작을 알렸다. 전범 처리를 위한 뉘른베르크 재판이 진행되었으며, 요르단과 필리핀 등 여러 국가가 독립을 선언하거나 자치권을 획득했다. 과학 기술 분야에서는 세계 최초의 범용 전자 컴퓨터인 에니악(ENIAC)이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에서 공개되어 정보화 시대의 기초를 닦았다.
한반도에서는 해방 이후의 혼란 속에서 남북 분단의 고착화 조짐이 나타났다. 전년도 말 발표된 모스크바 3상 회의 결과에 따라 신탁통치 반대 운동과 찬성 운동이 격렬하게 대립하며 좌우익 간의 갈등이 극에 달했다. 3월에는 덕수궁 석조전에서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개최되었으나, 신탁통치에 반대하는 정당 및 사회단체의 참여 문제를 두고 미소 간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한 채 결렬되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변화가 시도되었다. 남한에서는 남조선과도입법의원이 개원하여 입법 활동을 시작했고, 교육 분야에서는 국립서울대학교 설립안에 따른 진통 끝에 서울대학교가 출범했다. 그러나 식량 부족과 고물가 등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었으며, 이는 10월 항쟁(대구 10.1 사건)과 같은 대규모 민중 운동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북한 지역에서는 토지 개혁이 실시되어 사회주의 체제의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었다.
결과적으로 1946년은 전 지구적으로는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고 새로운 평화 체제를 모색하는 시기였으나, 한반도에서는 민족 내부의 분열과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얽히며 향후 전개될 남북 분단의 비극이 구체화된 해로 평가받는다. 이 해에 발생한 정치적, 사회적 사건들은 현대 한국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수령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