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6년

936년은 한반도 역사에서 중대한 전환점이 된 해이다. 고려의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마침내 후삼국 시대를 종결하며 민족 재통일을 완수하였다. 935년 신라의 자진 투항을 받아낸 고려는 이듬해인 936년, 대규모 군사력을 동원하여 후백제와의 최후 결전을 준비하며 분열되었던 국토를 다시 하나로 묶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당해 9월, 고려군과 후백제군은 일리천(현재의 경상북도 구미)에서 격돌하였다. 당시 후백제는 왕위 계승 문제로 인한 내분으로 전력이 약화된 상태였으며, 고려로 망명했던 후백제의 시조 견훤이 직접 고려군의 선봉에 서는 상징적인 사건이 발생하였다. 후백제의 신검은 고려의 압도적인 군사력과 내부 동요를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항복하였으며, 이로써 900년 견훤이 건국했던 후백제는 36년 만에 멸망하였다.

동아시아의 대륙에서도 커다란 정세 변화가 일어났다. 중국의 오대십국 시대 중 하나인 후당이 멸망하고 후진이 건국되었다. 후진의 건국자 석경당은 거란(요나라)의 군사적 지원을 받는 대가로 전략적 요충지인 연운 16주를 할양하였다. 이는 이후 수백 년 동안 중국 북방 국경 지대의 불안 요인이자 중원 왕조와 북방 민족 간 갈등의 핵심 원인이 되었으며, 거란이 중원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는 신성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오토 1세가 독일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하인리히 1세의 뒤를 이어 아헨에서 대관식을 치른 오토 1세는 이후 강력한 중앙집권화 정책을 추진하고 마자르족의 침입을 격퇴하는 등 유럽의 정치 지형을 재편하기 시작했다. 그의 즉위는 훗날 그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수여받아 신성 로마 제국 시대를 여는 중요한 서막이 되었다.

이처럼 936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새로운 질서가 수립된 해였다. 한반도에서는 고려라는 통일 국가가 본격적으로 출발하여 중세 사회의 문을 열었고, 동아시아와 유럽에서도 각각 새로운 왕조와 권력 체계가 등장하며 세계사의 흐름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이정표를 남겼다. 각 지역에서 발생한 이러한 사건들은 각국의 내부적 결속과 대외 관계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