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년

900년은 9세기가 끝나고 10세기가 시작되는 전환기적 시점으로, 전 세계적으로 고대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정치 세력이 부상하던 시기였다. 동아시아에서는 강력했던 통일 제국들이 쇠퇴하며 분열의 시대로 접어들었고, 유럽과 중동에서도 민족 이동과 왕조의 교체가 활발하게 일어났다. 이 해는 중세 초기에서 중세 성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성격을 강하게 띤다.

한반도에서는 통일 신라의 중앙 통제력이 극도로 약화되면서 후삼국 시대가 본격적으로 개막되었다. 서남해안에서 세력을 키운 견훤은 완산주(현재의 전주)를 도읍으로 삼아 후백제를 건국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이는 신라의 지배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강력한 독자 세력의 등장을 의미했으며, 북쪽에서는 궁예가 양길의 세력을 흡수하며 세력을 확장해 이듬해 후고구려를 건국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이로써 한반도는 신라, 후백제, 그리고 궁예 세력이 대립하는 삼국 분열의 시대로 회귀했다.

중국 대륙에서는 당나라가 멸망 직전의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황소의 난 이후 중앙 정부의 권위는 완전히 실추되었고, 각지의 절도사들이 독자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할거하는 군웅할거의 양상이 극에 달했다. 특히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던 주전충(주온)이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여 황제를 압박하고 있었으며, 이는 불과 몇 년 후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 시대가 시작되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유럽에서는 민족의 이동과 외세의 침략이 지속되며 중세 봉건 사회의 기틀이 형성되고 있었다. 잉글랜드에서는 앨프레드 대왕의 사후 에드워드 장형왕이 즉위하여 데인인들과의 전쟁을 이어가며 영토를 수복하고 있었다. 대륙에서는 카롤링거 왕조가 분열된 이후 동프랑크와 서프랑크 왕국이 각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마자르족의 침공이 중유럽을 위협하면서 지역 영주들의 방어 역량이 중요해지는 봉건화 과정이 가속화되었다.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권위가 약화되는 가운데 여러 지방 정권들이 독립적인 지위를 강화했다. 이슬람 문화권은 정치적 분열에도 불구하고 학문과 예술 분야에서는 번영을 지속했으며, 인도양을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망이 확장되면서 동서양의 교류가 꾸준히 이어졌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고전기 마야 문명이 쇠퇴기를 맞이하며 중심지가 북부 유카탄반도로 이동하는 변화가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