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1년은 9세기 후반의 시기로, 동아시아에서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통치가 이어졌으며 서유럽과 브리튼 제도에서는 바이킹의 침공과 이에 맞선 저항이 격렬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이 해는 세계사의 여러 지역에서 왕권의 교체와 중요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여 중세사의 흐름에 유의미한 변화를 가져온 해로 평가받는다.
동아시아의 상황을 살펴보면, 발해에서는 제12대 왕 대건황이 즉위하였다. 대건황은 선왕인 대이진의 뒤를 이어 발해의 통치 체제를 계승하였으며, 당나라와의 외교 관계를 지속하며 국가의 안정적 운영을 꾀했다. 한편, 통일신라에서는 제48대 경문왕의 치세가 이어지고 있었으나, 중앙 귀족들의 권력 다툼과 지방에 대한 통제력 약화로 인해 사회적 불안이 서서히 고조되던 시기였다.
브리튼 제도에서는 잉글랜드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인 앨프레드 대왕이 웨섹스 왕국의 왕위에 올랐다. 871년은 이른바 '앨프레드의 전투의 해'라고 불릴 정도로 바이킹 대이교도 군대와의 치열한 교전이 빈번했다. 애시다운 전투를 비롯하여 베이징 전투, 메레툰 전투 등 여러 차례의 격돌이 발생했으며, 형 에설레드 1세가 사망한 후 왕위를 계승한 앨프레드는 초기 패배의 위기를 딛고 훗날 잉글랜드 통합의 기초를 닦는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남유럽에서는 이탈리아 왕이자 신성 로마 황제인 루트비히 2세가 비잔티움 제국의 해군과 협력하여 바리(Bari)를 함락시켰다. 이는 847년부터 이탈리아 남부에 존재했던 바리 토후국을 멸망시킨 사건으로, 이슬람 세력의 이탈리아 반도 침입 거점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군사적 성과였다. 이 사건은 기독교 세력이 지중해 연안의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공동 전선을 형성했던 당시의 정세를 잘 보여준다.
종합적으로 871년은 각 대륙에서 왕권의 교체와 외세에 대한 저항, 그리고 종교적·군사적 거점 확보를 위한 움직임이 활발했던 해였다. 특히 앨프레드 대왕의 즉위와 남이탈리아에서의 승리는 유럽 중세사의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동아시아 또한 기존 왕조의 유지와 함께 내부적인 변화의 조짐을 겪으며 9세기 말의 격변기로 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