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7년

847년은 통일신라 문성왕 9년이자 발해 대이진 18년, 당나라 대중(大中) 원년에 해당하는 해다. 동아시아 정세는 당나라 선종의 즉위와 함께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당 선종은 전임 황제 무종의 불교 탄압 정책인 '회창폐불'을 중단시키고 불교를 다시 진흥하는 정책을 펼쳤다. 신라에서는 문성왕이 왕권을 공고히 하며 내정을 다스렸고, 청해진의 장보고 세력이 숙청된 이후 해상 무역의 주도권 변화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중동의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바스 왕조의 제9대 칼리파 알 와디크가 사망하고, 그의 동생인 알 무타와킬이 제10대 칼리파로 즉위했다. 알 무타와킬의 즉위는 이슬람 신학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이전 칼리파들이 지지했던 이성 중심의 무타질라 학파를 배척하고 전통적인 수니파 교리를 옹호하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의 종교적 방침이 보수적인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의미하며, 이후 수세기 동안 이슬람 세계의 신학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유럽에서는 로마 교황 세르지오 2세가 선종하고 레오 4세가 제103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당시 로마는 사라센 해적들의 잦은 침입으로 인해 큰 위협을 받고 있었다. 레오 4세는 즉위 직후 로마를 방어하기 위해 성 베드로 대성당을 포함한 바티칸 언덕 주위에 거대한 성벽을 쌓기 시작했는데, 이를 '레오 성벽(Leonine Wall)'이라 부른다. 프랑크 왕국은 843년 베르댕 조약으로 분할된 이후, 서프랑크의 카를 2세와 중프랑크의 로타르 1세, 동프랑크의 루도비쿠스 2세 사이의 영토 분쟁과 내부 갈등이 지속되며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비잔티움 제국에서는 미카엘 3세가 어린 나이로 즉위해 있었으며, 그의 어머니 테오도라 황후가 섭정을 통해 제국을 통치했다. 이 시기 비잔티움은 이슬람 세력의 팽창에 맞서 동부 국경을 방어하는 데 주력했으며, 내부적으로는 성상 파괴 운동이 완전히 종료된 이후 정교회 신앙을 재정립하고 문화를 부흥시키는 시기를 보냈다. 북유럽의 바이킹들은 이 시기에도 프랑크 왕국의 연안과 영국을 습격하며 약탈을 이어가 서유럽 사회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847년 전후로는 자연재해와 관련된 기록도 전해진다. 특히 중동 지역에서는 대규모 지진이 발생하여 다마스쿠스, 안티오키아 등 주요 도시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847년은 세계 곳곳에서 강력한 지도자의 교체와 종교적 정책의 변화, 그리고 외부 침입에 대응하기 위한 방어 체계의 구축이 활발하게 일어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