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

855년은 9세기 중반에 해당하는 해로, 율리우스력으로 화요일에 시작된 평년이다. 단기 3188년, 신라 문성왕 17년, 발해 대이진 26년, 일본 사이코(斉衡) 2년에 해당한다. 이 해는 서양 역사에서 카롤링거 왕조의 분열이 구체화되어 현대 유럽 국가들의 원형이 형성되기 시작한 중요한 시점으로 평가받으며, 동양에서는 통일신라와 발해의 통치 체제가 지속되는 가운데 자연재해 등의 내부적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유럽사에서 가장 결정적인 사건은 중프랑크 왕국의 분할을 규정한 프륌 조약(Treaty of Prüm)의 체결이다.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중프랑크의 왕이었던 로타르 1세는 병세가 위중해지자 자신의 영토를 세 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장남 루트비히 2세는 이탈리아와 황제 칭호를, 차남 로타르 2세는 로타링기아(현재의 로렌 지방)를, 막내 샤를은 프로방스와 부르고뉴를 상속받았다. 로타르 1세는 퇴위 후 프륌 수도원으로 들어갔으나 며칠 뒤인 9월 29일에 사망했다. 이 조약으로 인해 프랑크 왕국의 분열은 가속화되었으며, 이는 훗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의 국경선이 형성되는 역사적 기원이 되었다.

종교계에서는 교황권의 교체가 있었다. 7월 17일 교황 레오 4세가 선종하고, 베네딕토 3세가 제104대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이 과정에서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지지를 업은 대립교황 아나스타시오가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을 점거하는 등 교황 선출을 둘러싼 정치적 분쟁이 발생했으나, 결국 베네딕토 3세가 정통성을 인정받아 즉위했다. 한편 이슬람 세계에서는 수니파 4대 법학파 중 하나인 한발리파의 창시자, 이맘 아흐마드 이븐 한발이 바그다드에서 사망했다. 그는 이슬람 신학 논쟁에서 무타질라파의 합리주의에 대항하여 경전 중심의 전통주의를 고수한 인물로, 그의 죽음은 이슬람 지성사에 큰 획을 그었다.

한반도의 기록을 살펴보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문성왕 17년의 상황이 기술되어 있다. 855년 봄 1월에는 토함산에 지진이 발생하여 우물이 마르는 변괴가 있었고, 3월에는 서리가 내려 뽕나무가 해를 입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당시 농업과 양잠업에 의존하던 신라 경제에 타격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가을 9월에는 왕이 서쪽 주(州)와 군(郡)을 순행하며 민심을 살피고 사냥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 해에 신라의 유력한 귀족 김안이 반란을 꾀하다 처형되는 등 중앙 정계의 불안정함이 감지되기도 했다.

영국 역사에서도 855년은 바이킹 침략의 양상이 변화한 해로 기록된다. 이전까지 잉글랜드를 약탈한 후 겨울이 오면 본거지로 돌아갔던 데인족(Danes) 바이킹들이, 셰피 섬(Isle of Sheppey)에서 처음으로 겨울을 나며 주둔했다. 이는 단순한 약탈 원정에서 상시적인 주둔과 정착, 그리고 본격적인 정복 전쟁으로 전략이 수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같은 해 이스트 앵글리아에서는 에드먼드가 14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는데, 그는 훗날 바이킹의 침략에 맞서다 순교하여 기독교 성인으로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