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은 전 세계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격변이 일어난 해로, 흔히 '68혁명'의 해로 불린다. 이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기성 권위주의 체제에 대한 젊은 세대의 강력한 도전이 분출된 전환점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시작된 학생 운동은 노동자 파업으로 확산하며 국가 시스템 전체를 뒤흔들었으며, 이러한 저항의 물결은 유럽을 넘어 미국, 일본, 제3세계 국가들로 전파되었다. 이는 단순히 정권 교체를 목표로 한 정치적 운동을 넘어 일상의 민주화와 개인의 해방을 지향하는 문화 혁명의 성격을 띠었다.
유럽에서는 프랑스의 '5월 혁명'이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다. 드골 정부의 보수적인 교육 체제와 권위주의에 반대한 학생들의 시위는 공장 노동자들의 총파업과 결합하여 사회 전반의 마비를 초래했다. 동유럽의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프라하의 봄'이라 불리는 인간 중심의 사회주의 개혁 운동이 일어났으나, 소련군을 비롯한 바르샤바 조약기구 군대의 무력 개입으로 좌절되었다. 한편, 미국에서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암살 이후 흑인 민권 운동이 격화되었고, 베트남 전쟁 반대 운동이 전 국민적 저항으로 확산하며 반전 평화주의가 주류 담론으로 부상했다.
1968년의 전 지구적 저항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산을 가져왔다. 기존의 구좌파가 계급 투쟁과 경제적 불평등 해소에 집중했다면, 68혁명을 주도한 이른바 '신좌파'는 여성 인권, 환경 보호, 소수자 권리, 권위주의 타파와 같은 포스트 물질주의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웠다. 히피 문화로 대표되는 반문화 운동이 꽃피웠으며, 이는 대중음악, 미술, 철학 등 예술과 학문 전반에 걸쳐 파격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당시의 슬로건은 억압적인 사회 규범으로부터 개인의 자율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당대의 정신을 상징한다.
한반도에서 1968년은 세계적인 자유주의 물결과는 대조적으로 냉전의 긴장이 극에 달했던 해였다. 1월 21일 북한 공작원들이 청와대를 습격하려 했던 '1·21 사태'가 발생했으며, 이틀 뒤에는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가 북한군에 의해 나포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에 대응하여 대한민국 정부는 향토예비군을 창설하고 국가 안보 체제를 강화했으며, 국민교육헌장을 선포하는 등 국가주의적 통치를 공고히 했다. 서구 사회가 개인의 해방과 권위 해체를 경험하던 시기에 한국은 안보 위기를 계기로 병영 국가적 성격이 더욱 짙어지는 상반된 경로를 걸었다.
68년의 유산은 오늘날 현대 사회의 구조와 시민의식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비록 당시의 시위들이 즉각적인 정치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으나, 권위주의적 인간관계와 가부장적 질서를 해체하고 민주주의의 범위를 일상생활로 확장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오늘날 보편화된 인권 감수성과 다양성 존중의 가치는 상당 부분 1968년의 저항 정신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과적으로 68년은 전 세계가 근대적 가치를 넘어 현대적 가치로 이행하는 거대한 문명사적 분기점으로 평가받는다.